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과,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활동가들은 4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꿀잠을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앞줄 오른쪽), 오은주 고 문중원 열사 부인(앞줄 왼쪽) 등 이곳을 거쳐간 이들도 함께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꿀잠은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오는 저와 익산, 춘천, 광주, 부산, 대구 등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와서 잠자고 쉬는 쉼터였습니다. 노동 문제로 어려움에 처해 서울 본사에 와서 항의하는 분들의 잠자리가 바로 꿀잠이었습니다. 꿀잠에 다녀간 노동자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공간을 재개발로 없애버린다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문정현 신부)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대책위)는 4일 서울 영등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꿀잠’의 존치 의견을 반영한 주택재개발 정비계획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2017년 건물을 매입해 국내 첫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로 문을 연 꿀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몸과 마음을 기대온 곳이다. 문정현 신부와 지난 2월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후원 전시를 열어 건립비를 마련해 보태기도 했다. 꿀잠이 자리한 신길2구역은 2009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재개발조합이 설립되면서 재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이들은 재개발이 되더라도 꿀잠은 그대로 남아 노동자들의 쉼터로서 역할을 이어가길 바란다. 대책위는 “꿀잠은 전국에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랑방이고 백기완 선생, 문정현 신부가 혼신을 다해 세운 공동체적 공간이다. 역사적 공간이므로 존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영등포구청에 이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영등포구청은 대안을 찾아보겠다며 조합·꿀잠과 충분히 소통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재개발조합이 공시한 정비계획변경조치계획에는 꿀잠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주택재개발 정비계획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꿀잠에 머물렀던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유가족, 활동가들이 참석해 꿀잠이라는 공간이 가진 의미를 되짚었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처음 아들이 사고를 당한 뒤 서울로 올라와 꿀잠 쉼터에 도착했던 날이 기억난다”며 “상경투쟁에 만신창이로 지쳐있었는데, 마치 친정집에서 따스하게 보호받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한국마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세상을 떠난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는 “눈 뜨면 광화문에 나가 ‘문중원 살려내라’고 하고 저녁이면 꿀잠에 와서 잤다. 밤이면 숨죽여 울고 밥도 잘 못 먹고,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던 저는 꿀잠에서 머물며 견딜 수 있었다”며 “많은 노동자에게 휴식처였던 이런 곳이 사라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건물 하나가 아니라 재개발의 공공성이자 이 동네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우리의 삶”이라며 “영등포구와 서울시는 개발 이익을 노리는 토지 소유주뿐 아니라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 된 공익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착공식이 2017년 4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안전모를 쓴 채로 ‘비정규직’, ‘저임금’ 등의 문구가 적힌 띠를 자르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윤주 고병찬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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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사진첩] ‘꿀잠’에 깃든 노동자들의 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79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