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헤스터. 1998년 11월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아프리카계 트랜스젠더 여성이었던 그는 살해당했다. 트랜스젠더 증오 범죄인 정황이 명백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23년이 지났다. 트랜스젠더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는다. 오늘, 11월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23년 전 사건이 있고 나서 만들어졌다.
수많은 리타 헤스터가 있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트랜스젠더 살인을 기록하는 ‘트랜스젠더 살인 모니터링’ 프로젝트는 해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 있는 11월이면 보고서를 낸다. 한 해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트랜스젠더 살인 뉴스를 모아 얼마나 많은 트랜스젠더가 혐오로 목숨을 잃는지 기록한다. 지난 11일 낸 보고서를 보면, 2020년 10월부터 2021년 9월까지 375명이 트랜스젠더 혐오로 죽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7% 늘었다. 2011년부터 10년의 기록을 연도별로 모아놓은 그래프는 우상향 추세를 보인다. 2008년부터 2021년 9월까지 4042명의 트랜스젠더가 사망했다. 이 수가 전부는 아니다. 보도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죽음은 기록되지 않는다. 사회적 타살과 다름없는, 극단적 선택을 한 트랜스젠더도 4042명에는 없다.
1명. 2008~2021년 트랜스젠더 살인 모니터링에 잡힌 국내 피해자는 1명뿐이다. 2010년 한 트랜스젠더가 남성 가해자의 손에 살해됐다. 우리는 모두 안다. 1명뿐일 리 없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가 기억하는, 그리고 알려지지 않아 기억조차 할 수 없는 트랜스젠더의 죽음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는 걸 모두 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었던 변희수 하사. 군에서 강제전역을 당한 뒤 힘을 내 싸워보겠다고 했던 그는 지난 3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고’ 변희수 ‘전’ 하사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강제전역 취소는 행정소송을 거쳐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제 그를 ‘고’ 변희수 하사라고 부를 수 있다. 고 변희수 하사에 앞서 2월엔 2명의 트랜스젠더가 숨졌다. 성소수자 활동가, 트랜스젠더 김기홍씨가 세상을 떠났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의 대본을 쓴, 생전 자신을 ‘생존하는 트랜스젠더 작가’라 일컬었던 고 이은용 작가도 같은 달 숨졌다.
11월. 한 해를 마저 정리하기도, 오는 새해를 서둘러 준비하기도 모호하다. 12월이 되면 어떤 분위기에든 휩쓸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한 채 흘려보낼 것이다. 그래서 뇌리에 꾹꾹 눌러 오늘을, 추모해야 할 트랜스젠더 시민들을 기억해보기로 한다.
성소수자인 아이의 커밍아웃을 경험한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이 극장에 걸렸다.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주인공 ‘나비’는 시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 제목 <너에게 가는 길>의 의미는 부모가 자식에게 가는 길인 동시에, 제가 자식을 통해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가는 길이기도 해요. 저희의 이런 노력을 함께 해주려는 (관객) 여러분에게 가는 길이기도 하고요.” 그 길 위에서 걷자. 웃고 울며 함께 추모하자. 우리 곁의 그리고 이제는 곁에 없는 트랜스젠더 시민들을 잊지 않기로 하자.
이정연 젠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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