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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두환 죽었다고 끝난 일 아냐”…5·18 피해자 국가배상 소송

등록 2021-11-24 16:29수정 2021-11-25 02:33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 국가배상 청구 소송 기자회견에서 5·18 당시 피해자가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 국가배상 청구 소송 기자회견에서 5·18 당시 피해자가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ㄱ씨는 19살이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언니 집으로 가던 중 공수부대 5명에 붙잡혔다. 군인들은 군홧발로 배를 차고, 손으로 가슴을 주물렀다. 그런 뒤 대검으로 가슴과 등을 찔렀다. 주변에 숨어 있던 학생들의 도움으로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살 수 있었다. 입원해 있을 때도 수사관이 찾아와 집회참여 여부 등 신문을 이어갔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무섭다. 딸이나 아들이 늦게 오면 저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안경순씨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인 동생을 잃었다. 동생은 시민군으로 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된 안종필(당시 16살)군이다. 안군이 스러진 뒤 가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아들, 동생을 잃은 슬픔에 더해 ‘폭도 가족’이라는 철저한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안씨는 “당시 군인들이 달려들어 짐짝처럼 주검을 하나하나 던지던 참담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는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그 가족의 증언이 이어졌다. 특히, 이들은 한마디 사죄도 없이 23일 사망한 5·18 광주학살 책임자 전두환의 죽음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씨는 “전두환이 죽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 가족들이라도 5·18 피해자들에게 꼭 사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형호 5·18 부상자회 서울지부장은 “5·18과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25일 (전씨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앞에 모여, 항의의 뜻을 밝히고 발인하는 날까지 손팻말 시위를 할 예정이다. 저 장례를 조용히 치르게 놔둘 수는 없다”고 했다.

이런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5·18 피해자들과 함께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날 소장을 낸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는 70여명이고, 앞으로 피해자들이 신청하면 추가 소송을 낼 계획이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조영선 변호사는 “5·18항쟁이 민주화운동이라는 평가는 이미 이뤄졌지만, 전두환은 이를 폭도에 의한 반란으로 규정하고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등 정당한 평가를 외면해왔다”며 “그동안 피해자들이 받은 보상 또한 지나치게 낮거나 모욕적이었다.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그 죄를 국가에 묻고자 한다”고 소송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5월과 7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 보상법)과 관련해 내린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그동안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은 5·18보상법에 따라 일정한 생활지원과 보상을 받았으나,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배상을 받지 못했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헌재와 대법원이 5·18 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보상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손해에는 적절한 배상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소송을 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최형호 서울지부장은 “5·18 유공자가 된 지도 2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권리를 침해받은 손해를 회복한다는 뜻의) ‘배상’이라는 용어는 쓸 수 없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가 공권력에 항거하다 쓰러져 죽고 다쳤는데도, 개인 간 싸움의 피해를 회복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보상’이라는 말로만 보상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민변은 이날 오후 성명을 내어 전씨의 남은 가족들이라도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변은 “12·12, 5·18, 삼청교육대, 강제징집·녹화 선도공작, 형제복지원, 의문사, 그리고 온갖 시국 공안 사건 및 재일동포간첩 조작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그가 살아생전 자행했던 수많은 악행처럼, 진실을 밝히지도 않았고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은 전두환의 죽음은 또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은 가족들이 5·18을 비롯한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고, 역사 앞에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부정하게 축재하여 숨겨둔 재산을 꺼내어 미납추징금을 완납하는 길이 역사와 피해자 앞에서 조금이나마 전두환의 악행에 대해 속죄하는 길일 것”이라고 촉구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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