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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 가슴도 보여줄까?” 아파본 여자들 사이, 기꺼운 ‘가슴 트기’

등록 2021-12-18 17:01수정 2021-12-18 23:16

[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
암환우와 복원 수술

보형물로 교체하면 어떻게 될까
환우들 앞선 수술 결과 보여주며
건강한 암경험자 역할 모델 돼줘
두려움 벗게 해준 ‘연대와 공감’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보형물 복원하신 거죠? 마음에 드세요? 확장기 빼고 보형물 넣으면 가슴은 좀 자연스럽나요? 보형물 복원 수술은 덜 아프다는데, 정말 덜 아파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피부만 남기고 왼쪽 가슴살을 도려내고 확장기를 넣어 가슴 조직을 최대한 늘린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그 확장기를 뺀 자리에 자연스러운 가슴 모양의 실리콘 보형물로 교체하는 수술을 한다고 성형외과 의사는 설명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전과 가슴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 가슴 모양처럼 정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먼저 수술한 환자에게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수술한 뒤 병실에서 만난 할머니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천안에서 오셨다는 60대 할머니는 보형물로 교체하는 수술을 한 환자였고, 전절제 수술을 한 나보다 회복이 더 빨랐다.

‘가슴 튼’ 이들에게서 받는 위로

“으응, 진짜 마음에 들어요. 이 나이 들어 가슴 복원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복원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니까. 나는 가슴 한쪽이 너무 크고 축 처져 있었는데, 이번 수술 하면서 다른 쪽 가슴은 축소하고 보형물 넣은 가슴에 맞춰 가슴선을 올렸어. 짝짝이 가슴 때문에 신경 쓰고 살았는데, 이제는 자신감 갖고 살 수 있게 된 것 같아. 전절제할 때보다 통증도 덜하고 확실히 회복도 빠르네. 궁금하면 내 가슴 한번 보여줄까?” “정말요? 괜찮으세요?” “보여줄 테니 커튼 치고 이리 와 봐요.”

병실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할머니는 선뜻 내게 가슴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환자복을 열고 가슴을 보여주는데 내 입에서 저절로 “와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양쪽 균형도 잘 맞고 가슴 모양이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가슴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말 너무 수술이 잘됐네요. 축하드려요. 이제는 건강할 일만 남았네요” 했고, 할머니는 만족감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환자복 단추를 닫았다.

할머니만이 아니다. 이처럼 내게 가슴을 ‘트는’ 사람이 더 있었다. 마지막 항암 주사를 맞던 날, 암 진단 때부터 병원에서 만나 알고 지낸 언니가 병실로 찾아왔다. 유방암 3기 말 진단을 받은 언니는 항암 치료의 효과가 좋아 암 크기가 확 줄어 부분절제 수술을 했다. 항암 치료의 각종 부작용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연락이 됐다. 나의 마지막 항암 치료 날과 언니의 병원 검진 날이 겹쳐 언니가 병실로 찾아왔다.

“선아씨, 진짜 고생 많았네~. 마지막 항암 주사 너무 축하해! 이제 수술만 잘하면 되겠네.”

내 손을 꼭 잡아준 언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항암 치료할 때보다 표정도 얼굴색도 밝아진 언니는 수술 이야기를 하다 “암 크기가 그렇게 줄어들다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수술도 너무 잘됐어. 걱정 많이 했는데 잘됐어. 내가 수술한 가슴 보여줄까?” 했다. 가슴을 보여주겠다는 언니의 말에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들 왜 이렇게 내게 가슴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야. 크크크.’ 부분절제한 가슴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긴 했다. “언니만 괜찮다면 저야 보고 싶죠, 하하. 언니 정말 수술 잘됐나 보다~, 나한테 보여준다고 하고.” “교수님 손, 정말 신의 손이야. 흉터도 크지 않고 수술 잘됐어. 부분절제하니까 회복도 빠르긴 하더라고.”

언니가 커튼을 치고 윗옷을 올리고 수술한 가슴을 보여주었다. 멀리서 본다면 수술 흉터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와아! 언니 정말 자연스러워요. 흉터도 크지 않고 수술 너무 잘됐어요. 언니 정말 축하해요. 3기 말이라고 그렇게 걱정하더니. 봐요~, 이렇게 항암 치료 효과도 좋고 부분절제 수술까지 받았잖아요. 모든 일이 잘될 거예요.”

이외에도 최근 항암 치료 5년 후 완치 판정까지 받은 한 동료도 내게 기꺼이 가슴을 보여주었다.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은 그는 예방적으로 나머지 한쪽 가슴까지 전절제하고 양쪽 모두 보형물 복원을 했다. 보형물 복원을 할지, 복부 복원을 할지 고민할 때 이 동료는 복부 복원한 사람들의 경험까지 알아봐 주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는 내게 “보형물 복원을 하면 아무래도 보형물 있는 가슴이 차갑고 내 가슴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진다”며 “보형물 복원과 복부 복원 장단점을 잘 알아보고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항암 치료 4회 뒤 운동을 열심히 하며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했던 그는 내게 “암 진단 이전의 삶과 암 진단 후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암 진단 전보다 더 건강해지고 날씬해졌으며, 더 풍만한 가슴을 얻게 된 그는 자신의 외모에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습관을 지닌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항암 치료 뒤 걷기 운동부터 시작해 서서히 운동량을 늘렸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뒤로는 헬스장에서 개인 훈련(PT)을 받으며 근육량을 늘렸다고 했다. 그는 내게 건강한 암 경험자의 역할 모델이 되어주었다.

두려움 벗어나게 해준 건 연대와 공감

암 진단 뒤로 이렇게 여러 여성이 내게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었고, 그런 그들의 행위는 타자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공감과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내게 느껴졌다. 가슴의 살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보형물을 넣든 복부 살을 떼어 붙이든 그 경험은 개별 여성에겐 매우 힘들면서 고유한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힘든 경험을 하기 전 걱정하며 떨고 있을 때, 먼저 그 길을 간 환우들은 자기 가슴을 보여주며 그렇게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제공해주었다. 가슴을 보여준 환자 역시 자기 가슴을 남에게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에게 긍정적 반응을 얻고 수술한 가슴에 대한 자신감도 얻는 것으로 보였다.

수술한 뒤에도 이런 ‘은밀한’ 연대와 공감은 계속됐다. 수술 뒤 회복하면서 상처와 흉터의 회복 정도, 새로 만든 유두의 크기 변화,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 딱딱해진 가슴의 정도 등을 환우들끼리 공유하며 그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어왔다. 친근감의 척도를 나타내기 위해 어떤 이들이 ‘생얼을 보이다’나 ‘방귀를 트다’를 쓴다면, 유방암 환우끼리는 ‘가슴을 트다’로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본다.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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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 <자존감은 나의 힘>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등의 저자. 현재는 병가 중이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알게 된 암 치료 과정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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