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오픈마켓 셀러 강아무개씨, 프리랜서 성우 김상우씨, 가사 플랫폼 노동자 신미정(가명)씨, 프리랜서 피디 김하늘(가명)씨
플랫폼 기업에 생계를 걸고 사는 사람들은 배달기사와 음식점주만이 아니다. 누구나 상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오픈마켓 판매자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는 가사 노동자와 영상 제작 등 프리랜서들도 플랫폼에 수수료와 광고비를 내거나 혹은 플랫폼이 사실상 ‘사용자’ 역할을 하지만 정작 보호는 받지 못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국내 오픈마켓 시장은 거래 규모가 82조원 수준이다. 윤영재(37)씨는 11번가·옥션·지마켓·네이버·쿠팡·위메프 등의 오픈마켓에서 생활용품을 파는 ‘셀러’(판매자)다. 검색이 잘되고 경쟁이 적은 키워드를 골라내 자신이 파는 상품을 플랫폼 첫 페이지에 노출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판매 실적과 평점을 쌓으면 어느 정도 매출이 나왔다. 그런데 플랫폼은 6개월이나 1년에 한번씩 상품 노출 ‘로직’을 일방적으로 바꿔버린다. “오프라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열심히 노력해서 명당으로 만들었는데 갑자기 가게 위치가 바뀌는 것 같은” 일이니까. 윤씨는 최근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쿠팡의 ‘아이템 위너’ 제도는 셀러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아이템 위너란 최저가를 내놓은 판매자가 같은 상품에 대한 다른 판매자의 상품 사진과 후기를 몽땅 가져갈 수 있게 해둔 오픈마켓판 승자독식제도를 말한다. 쿠팡에서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30대 강도훈(가명)씨는 “제가 제품에 홍보 마케팅도 하고 리뷰를 쌓기 위한 사은품도 제공했는데, 다른 판매자가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으로 내놓으면 이미지나 평판까지 모두 가져가버린다”며 “쿠팡은 이걸 신규 셀러들이 더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혁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셀러 동의 없이 구매자의 반품 요청을 일방적으로 승인하는 쿠팡의 ‘직권환불’ 정책에 대한 불만도 여럿 나왔다. “소비자원이 있는 것처럼 셀러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연수(가명·44)씨의 말이다.
‘고객 중심’ 설계라며 플랫폼만 고객 ‘칭찬’을 독점하고, 손해는 판매자나 노동자가 떠안는 시스템은 청소나 돌봄 등 가사 노동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4년차 청소 매니저 신미정(가명·54)씨는 청소 플랫폼 업체를 통해 한 가정집에 방문 청소를 갔는데, 업체가 공지한 가격과 청소 시간보다 집 크기가 더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고객에게 물어보니 “플랫폼 업체가 집 크기를 실제보다 작게 등록하고 더 싼값에 서비스받으라고 권유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신씨는 “플랫폼이 뒤통수를 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평점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3년차 청소 매니저 최진희(가명·48)씨는 일하다 허리를 다쳐 청소 일을 쉬게 되었다고 알렸다가 평점을 “테러 수준으로” 받았다. “그 뒤로는 일할 수 있는 곳이 서울 강남, 서초 이런 곳에서 경기도 김포, 광명 이런 먼 곳으로만 떴어요. 고객센터에 말했더니 ‘평점은 건드릴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일감을 구하기 위해 플랫폼에 광고비를 써야 하는 프리랜서들도 있다. 성우인 김상우(26)씨는 숨고, 크몽 같은 일자리 플랫폼에 프로필을 올려놨는데, 이 프로필을 첫 페이지에 보내기 위해 광고비 9만9천원을 내기도 했다. 일감을 받으면 수수료도 내니 이중 부담이 된다. “이 업계도 플랫폼이 권력을 가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프리랜서 피디(PD) 김하늘(가명·36)씨는 “플랫폼이 지나친 가격 경쟁을 부추기면서 시장을 파괴하고 있다. 플랫폼 너머에 있는 고객과의 미팅도 금지해 고객이 어떤 작업을 원하는지 사전 협의도 못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는 갈 길이 멀다. 인공지능(AI) 학습 데이터 제작을 위해 데이터를 분류하고 가공하는 레이블링 작업을 하며 건당 수수료를 받는 김서윤(가명·22)씨는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이 생기고, 안압이 높아 녹내장 위험이 있다는 진단도 받았다.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에 따라 특수고용직 몇개 직종에 고용보험 가입이 시작됐지만, 김씨는 여전히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대상자가 아니다. 김씨가 “최소한의 사회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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