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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이게 될까요? 후보들이 할까요?…1,267,000자·6,335장·139명의 질문들

등록 2022-02-22 04:59수정 2022-03-25 22:17

나의 선거 나의 공약|에필로그

‘139와 6335’

3월9일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겨레>가 1월3일부터 2월21일까지 6회에 걸쳐 보도한 유권자와 함께하는 대선 정책 ‘나의 선거, 나의 공약’을 압축하는 숫자다. ‘139’는 20대 대선 후보들에게 △기후위기 △부동산 △플랫폼 산업 △성평등 △돌봄 복지 △지역균형 등 6가지 의제와 관련한 정책을 요구하기 위해 <한겨레>와 심층 인터뷰한 시민 유권자의 수다. ‘6335’는 이 139명이 한 말들을 모은 발언 전문의 분량이다. 200자 원고지로 6335장이라는 뜻이다. 출판계에선 요즘 원고 600~800장으로 책 한 권을 묶어 낸다니까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들에게 책 8~10권 분량의 요구를 쏟아낸 셈이다.

공공 저널리즘을 구현하고자

이번 대선 정책에서 대선 후보자의 말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익숙한 방식의 정치 보도에서 벗어나 시민이 원하는 정책 의제를 대선 후보자들에게 밀어올리는 ‘공공 저널리즘’을 구현하고 싶었다. 선거의 주인공이 피선거권자인 대선 후보자들이 아니라 선거권자인 시민 유권자들이라는, 평소 외면받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공론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를 위해 <한겨레>는 각 의제에 관심이 많지만 정치 성향은 다양한 유권자들을 섭외했고,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며 정책 요구를 하도록 독려했다. 이후 139명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이들이 처한 각자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또 이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 요구를 정리해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 4명에게 보냈고, 이들의 정책 공약 답변을 받아 지면과 한겨레 누리집(hani.co.kr)에 게재했다. 이 모든 과정은 여섯 가지 의제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베테랑 기자들이 나눠서 진행했다.

<한겨레>가 만난 유권자들의 삶은 피폐했고, 척박했으며, 억눌려 있었다. 동해의 한 어민은 기후위기로 올라간 수온 때문인지 문어 어획량이 5분의 1 이하로 급감하며 생계를 위협받고 있었다. 아내가 쌍둥이를 출산하며 홑벌이가 된 한 무주택자는 신혼희망타운 분양가 마련을 위해서 기념일조차 외면하며 허리띠를 졸라맨 채 살고 있었다. 한 배달 노동자는 4년 동안 피해자로서만 9차례나 사고가 났는데 그때마다 오토바이가 넘어져서 깔리거나 같이 구르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한 자영업자는 배달 플랫폼의 “사채보다 더 나쁜” 수수료 때문에 음식값을 올리든가 음식의 질을 낮출 수밖에 없어서 괴롭다고 했다. 한 여성은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를 했다는 이유로 온라인에서 온갖 괴롭힘을 당한 뒤 “내가 여성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인가 싶어 힘들었다”고 한탄했다.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고된 삶

치매를 앓게 되면서 부쩍 강퍅해진 91살 어머니의 욕설과 침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안고 돌보면서 “하루 7시간 이상 자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 53살 딸은 통화 도중에 말했다. “엄마, 그거 뜯으면 안 돼. 그거 뜯으면 올 풀려. 누워 엄마. 엄마, 나 지금 잠깐 통화해야 하니까 여기 주무시고 계셔. 누워서 텔레비전 보고 계셔.” 수화기 너머로 그의 고된 삶이 흘러내려 권지담 기자의 마음이 무너졌다. 고관절이 망가진 79살 어머니 간병 비용으로만 2천만원 이상 쓰면서 “가정 경제가 파탄 났다”고 했던 51살 딸은 기사가 나간 뒤 최근 요양병원에 보낸 어머니의 황망한 사망 소식을 알려오기도 했다. 그는 슬픔 속에서도 ‘제발 엄마 같은 중증 병자들을 위한 간병 정책이 잘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문자메시지를 기자에게 보내왔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하루 버텨내지만 유권자들은 정작 자신들의 처지와 말을 정치의 언어로 번역하는 걸 어려워했다. 이번 기획에 참여한 취재기자 18명 가운데 가장 연차가 낮은 박강수 기자(입사 5개월차)가 말한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힘든 점을 열심히 말하고 필요한 요구를 밝힌 뒤에,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하느냐’나 ‘어떤 공약을 바라느냐’ 등과 같은 현실 정치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면, ‘정치에 관심이 없다’거나 ‘정권교체 혹은 정권연장을 바란다’ 등과 같이 상투적인 답변이 나왔다. 자신의 일상을 정치적 요구로 각색하는 데 능숙한 분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 왜 우리는 정치를 떠올릴 때 일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습관이 생겼는지 두고두고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덜 피곤하고 덜 짜증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일상의 정치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싶었다. 이번 기획이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대안이기도 한 듯하다.”

대선 후보에게 요구를 말할 기회 없었다

지역 청년을 취재한 김규현 기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인터뷰한 지역 청년들이 가장 어려워했던 질문이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정책은?’이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 ‘수도권과 지역 차별을 없애달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적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손팻말에 정책 요구사항을 적으면서도 ‘이게 될까요?’ ‘쉽지 않겠죠?’ ‘후보들이 할까요?’라고 되묻는 이들이 많았다. 시민이 스스로 대선 후보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답을 듣는 경험은 처음이어서 그런 듯하다. 노동조합 등 조직된 단체가 아니라면 일상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말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자신이 뽑을 선출직 후보들과 대화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는 시민들의 이런 한숨과 눈물, 바람을 잘 받아안을 수 있을까. 서로의 정책을 견주고 토론하며 유권자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함께 발굴해가는 선거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 정치는 <한겨레>가 요구한 성평등 정책 답변을 거부하고 이것을 페이스북에 자랑스레 알린 제1야당과 같이 배제의 정치를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시민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는 것이 정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나의 선거, 나의 공약’에서 만난 시민 유권자 139명의 목소리를 담은 디지털 특집 페이지를 오픈한다. 또 기획 연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이북(e-book)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다.

‘나의 선거, 나의 공약’ 특별취재팀

기획 총괄 이재훈(정치부)

취재 최우리·이근영·김정수·김민제(기후변화팀), 진명선·노지원·안태호(경제산업부), 박태우·권지담(사회정책부), 이정연·최윤아·임재우·박고은(젠더팀), 박수혁·김규현·김용희(전국부), 박강수(스포츠팀)

사진 강창광·김태형·김명진·신소영·백소아·김혜윤

편집 김화령·강일규·허기현·박정민·이정숙

인포그래픽 조예진·양혜림

디지털 이화섭·박지환(테크영상팀)

도움 주신 분들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김선미 성북주거복지센터장, 송상호 국민건강보험공단 소통실 부장, 조기현 작가(영 케어러),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간병시민연대, 이승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부위원장(중앙대 교수),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 양승훈 경남대 교수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한겨레가 이(e)북으로 펴낸 ‘나의 선거, 나의 공약’.
한겨레가 이(e)북으로 펴낸 ‘나의 선거, 나의 공약’.

※여기를 클릭하면 한겨레 2022 대선 정책 가이드 ‘나의 선거, 나의 공약: 시민 138명이 란다' 웹페이지와 이북(e-book)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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