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이대남 담론’에 반대하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만든 기자회견 웹자보.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제공
변현준(21)씨는 나이와 성별로 분명 ‘이대남(20대 남성)’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정치권과 언론이 호명하는 ‘이대남’에 어쩐지 자신이 속한 것 같지 않다. 변씨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약속한 ‘여성가족부 폐지’에 열광하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한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한 청년의 글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저 사람(대선후보)들은 20대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게 젠더 문제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전 서울에서 집을 구하고 집주인의 갑질에 당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페미니스트 남성이기도 하고요. 20대 남성은 안티페미 밖에 없을 거라고 보는 정치인들의 태도에 화가 납니다.”
변씨처럼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꺼내든 ‘이대남 담론’을 거부하는 청년 남성들이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대선 캠프가 20대 남성을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단일한 집단’으로 정의하고 선거 캠페인을 벌이는 것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는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대남이 아닌 이대남’들의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이대남이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페미니스트 이대남으로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까요?” 지난달 3일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이대남 담론에 문제를 느낀 남성 15명이 모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에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청년 남성이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시작되는 글을 써서 자신들과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찾았다. 이들은 글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청년 남성인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의 원인이 페미니즘이나 어떤 페미니스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정치와 언론이 펼치고 있는 성별과 세대 갈라치기가 그 어떤 세대와 성별의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정치권과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다 똑같은 청년남성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에 6일 현재 200명이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특정 성향의 20대 남성이 과잉대표 되고, 그 주장이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씨는 “제 또래 남성들과 막상 깊게 대화를 나눠보면 또 다르다. 성평등이라는 당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거나, 어떤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서는 심하다고 인정하는 친구들도 있다”며 “하지만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대남’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페미니스트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조명되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청년 남성들조차 이런 흐름에 낙오되기 싫어서 침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청년 남성들이 ‘가상의 이대남’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 다른’ 청년 남성의 목소리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모임에 참여하는 트랜스젠더 남성인 김정현(32)씨는 “저 같은 남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여성을 혐오하는 젊은 남성만 이대남이 아니고 더 다양한 형태의 청년 남성이 있다는 것을 정치권에 보여주고 싶어서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치권이 ‘성별 갈라치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더 다양한 청년 의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변씨는 “턱없이 비싼 월세 집에서 사는 청년 세입자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청년 노동자에 대한 얘기는 안 보인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은 “이 세상에 그저 ‘이대남’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권과 미디어는 혐오를 부추기는 것을 멈추고 성평등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구체적인 정책을 보여달라”고 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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