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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조인 꿈꾸던 30대 청년은 왜 코인 사기범이 됐을까

등록 2022-02-08 13:59수정 2022-02-09 02:35

[가장 보통의 재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검정 후드티를 입은 청년이 법정에 들어섰다. 지난해 말 성탄절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법조인을 꿈꾼 서른 두살 청년이 선 자리는 법대 위도, 검사석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반성 많이 했습니다.” 그는 피고인석에서 고개를 숙였다. 청년의 표정은 검정 마스크에 가려있었다.

그는 20대 때부터 로스쿨 진학과 행정고시를 동시에 준비해왔다. 그러나 3년 전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그의 삶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는 2019년 한 블록체인 기업에서 프리랜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다. 회사에 상근하지 않고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일감이 주어지면 처리했다. 성과가 좋았다. 회사 대표가 그에게 회사에 상주하며 일을 해달라고 제안한 이유다.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회사로 출근하며 그는 대표와 개인적으로 가까워졌다. 그해 9월, 대표는 그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블록체인 기업을 운영하며 가상화폐에 직접 투자도 한 대표는 투자 손실을 보고 있었다. 청년은 그런 대표에게 ‘스테이킹’이라는 가상자산 운용방식을 소개했다. 은행 예금 상품에 가입해 돈을 맡겨두고 이자를 받는 것처럼, 가상화폐를 암호화폐 거래소에 맡기고 이자로 가상화폐를 받는 방식이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가상화폐 가격이 수시로 변동하는 탓에 시세가 급락하면 이자를 받더라도 계좌에 담긴 가상화폐 개수만 늘 뿐, 실제 수익은 줄어들 위험이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대표는 청년의 설명에 “이해하기 어렵다”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넸다. 관련 프로그램을 직접 설치해달라고 한 것이다. 견물생심이었을까. 청년은 이 과정에서 대표의 가상화폐 지갑 계정에 접속할 수 있는 ‘마스터키’ 단어 조합을 알게 됐고, 그해 10월 자신의 집에서 이를 이용해 대표가 갖고 있던 2억원 상당의 가상화폐 9만6천여개를 자신의 가상화폐 계정으로 이체했다.

이 일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11월 청년은 접근 권한이 없는 남의 계좌에 접속한 혐의(정보통신망법의 정보통신망 침해행위)와 남의 계좌에서 가상화폐를 몰래 인출한 혐의(컴퓨터 등 사용 사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청년은 법정에서 “가상화폐를 어떻게 했는가”라는 판사의 물음에 “모두 처리했다”고 답했다. “전부 다 팔아서 그 돈으로 대표님 돈의 상당 부분을 변제해드렸고 합의도 마쳤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죄책감에 마음을 졸이며 절대 범법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청년의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피고인은 로스쿨 입시와 행정고시를 준비하며 성실한 사회인으로 살아오던 중 이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꿈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청년의 1심 선고 공판은 지난달 중순 열렸다. 판사는 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2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얻은 이익이 범행 당시 기준으로 2억원에 이르는 등 죄책이 무겁지만, 초범인 데다가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그는 확정일로부터 4년 동안 판·검사 등 공무원이나 변호사가 될 수 없다. 국가공무원법이나 변호사법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가 끝난 뒤 2년 동안은 공무원이나 변호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법정에서 본 청년의 현실과 그가 품은 꿈의 간극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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