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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낮엔 폐지, 밤엔 냉골방…건강보험 말소된 어르신은 어찌 살까?

등록 2022-02-12 16:07수정 2022-02-12 18:01

[한겨레S]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위태로운 노년기 이웃의 삶

힘든 환경서 홀로 사는 70대 형근님
거동 불편해 약 챙기는 것도 부담
건강보험은 말소됐는지조차 몰라
봄이 되면 잠시 마음이나마 펼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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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 의뢰로 한 어르신 댁을 찾았다. 오래된 주택 반지하였다. 문을 두드리는데 기척이 없다.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보니 열린다. 방에서 티브이 소리가 들리니 누군가 있는 거 같다. “어르신, 계세요?” 인기척을 내며 천천히 들어가니 어르신이 주무시고 계신다. 직접 깨우기는 죄송해서 방문을 계속 두드리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

주민센터에서 준 의뢰서에 청력 소실 내용이 기억났다. 깊은 잠을 못 자는 어르신이 많아 혹여 모처럼 맞이한 단잠일 수 있어 밖으로 나왔다.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라 기다렸다. 15분쯤 지나 마치 처음 온 듯 같은 순서를 반복했다. 방에 들어가진 않고 문 앞에서 꽤 큰 소리로 “어르신” 하고 외쳤지만 역시 미동이 없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충분히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고, 30여분 뒤 처음 온 듯 같은 순서를 반복했다.

_______
장기요양서비스가 필요해

다행히 이번에는 일어나 계셨다. 말이 잘 안 들리시는지 소통이 어려웠다. 목에 건 명찰로 나를 알리고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아프신 곳은 없는지 등 여러 가지 여쭤보아도 대답이 명확하지 않다. 처음 온 듯 행동하였지만 세 번째 방문이라 방 안이 익숙하다. 근처 교회 달력이 걸려 있는 것을 봤을 때 교회에 다니시는 듯하다. 짐은 별로 없고 한쪽 벽면은 최근 도배했는지 깨끗하다. 주민센터 도움으로 최근에 보증금을 지원받아 이사 온 건 아닐지 짐작해본다.

어르신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거동은 가능하지만, 허리도 굽고 바싹 말라 기력이 없어 낙상 위험이 높다. 만성질환 약을 복용하는데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닌 듯 보인다. 주민센터에서는 장기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나에게 소견서를 부탁하였다. 내가 판단하기에도 요양보호사 지원으로 식사 등 일상 도움이 필요하다. 건강 상태가 악화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관리해서 몇 달 뒤 혹은 몇 년 뒤에 진행될 노쇠화를 늦춰야 한다. 처음 들어갈 때도, 세 번째 방문 후 나올 때도, 이 어르신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시나, 잘 지내시고 계신 건지 걱정이 되었다.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를, 또 동네 이웃들이나 교회 교우들과 어울려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비슷한 시기 주민센터에서 또 의뢰 주신 70대 후반의 형근(가명)님은 건강보험이 말소된 상태였다. 주민센터 간호사님이 몇 번 찾아뵈니 혈압이 높아서 걱정되어 진료를 부탁하셨다. 실제로 혈압이 매우 높았다. 약을 먹으면 좋겠는데 건강보험이 말소된 상태라 다시 회복하고 약 처방을 드리기로 하였다.

_______
돈 찾는 것도 쉽지 않아

형근님은 강원도에서 지내시다가 가까운 가족들이 세상을 떠나고 먹고살 길이 없어 5년 전 이웃 사람들을 따라 인천으로 와서 소일거리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6개월 전 서울에 와 월세 25만원 단칸방에서 지내고 있다. 낮 시간에 폐지를 줍고 나머지 시간에는 집에 있다고 하시는데 집은 난방도 안 되고 그저 겨우 누울 크기의 전기장판 한 장이 깔려 있다.

“집에서는 뭐 하며 시간 보내세요?”

“책 보거나 그냥 있지.”

책이라고 해봐야 몇 권 있지도 않다. 건강보험 말소 상태로 보아 병원에 마지막으로 언제 갔는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얼마 뒤 건강보험이 회복되고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였다. 다행히 다른 곳에 큰 문제는 없다. 추운 겨울이라 높은 혈압은 걱정이다. 며칠 뒤 주민센터 사회복지사와 함께 혈압약을 들고 찾아가서 약을 드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예전에는 산에 가서 약초도 끓여 먹고 몸이 좋아졌는데….”

어르신은 약 먹는 게 익숙하지 않으신지 탐탁지 않아 하신다. 약을 드시면 좋을 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어르신 상황으로 보았을 때는 약도 중요하지만 당장 생활이 중요하다. 월세도 내야 할 테고 뭐라도 드셔야 할 텐데, 돈이 필요하다. 얼마 전 주민센터에서 방문해서 통장을 만들어드리고 생활비를 지원해드렸다고 했다.

“그런데 어르신, 저번에 저희랑 같이 은행에 가서 통장 만들었잖아요. 그거 어디에 있어요? 저희가 생활비 쓰시라고 지원을 해드렸는데.”

어르신은 “통장이 어디에 있더라?” 하며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하는데 순간 통장을 잃어버린 건지, 얼마 전 일을 기억을 못 하시는 건지 등등 여러 생각이 스쳤다. 인지가 온전하지 않았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마지막으로 두꺼운 책을 뒤적거리시더니 “이거?” 하고 꺼낸다. 필요할 때 쓰시라고 통장을 만들어드리고 지원금도 넣어드렸는데 사용하실 줄 모르면 소용이 없다.

“아니, 사람들이 들어와서 뒤지니까….”

좀도둑이 든다고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집 현관문이 거리와 바로 마주해서 누구든 들어와서 집을 뒤져서 훔쳐가는 일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통장을 숨겨 놓았다. 집이 다소 지저분한 것도 누군가 몰래 들어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회복지사님과 나와서 은행에서 돈 찾아서 월세 내고 식사하시는 것을 빨리 도와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_______
나는 그저 방문객일 뿐

나는 그저 우연히 찾아간 방문객일 뿐이라 어르신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오랜 기간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온 분들이다. 다만 그들이 처한 환경을 보면 조금 슬프다. 반지하 방문 앞의 정돈되지 않은 가스 선로, 몸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전기장판,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는 현관문. 위태로운 환경이다. 게다가 어르신들은 병원 내원과 건강 관리, 은행 업무 등 혼자서 챙기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두 분을 만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추위가 매서웠던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어서 날이 풀려 어르신들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활짝 펴실 수 있기를 바라본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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