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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끝나지 않은 현장실습 사고…“정운아, 이제 집에 가자”

등록 2022-02-26 06:59수정 2022-02-26 09:53

[한겨레S] 커버스토리
여수 특성화고 홍정운군의 꿈은 누가 부서트렸나

현장실습 운영 무성의한 학교, 마리나 관리 대책 없는 여수시
요트업체 사장 징역 5년 받았지만, 이들에겐 아무 책임 없나
“해경은 수중사고인데 전문가에게 묻지도 않고 성의 없이 조사”
지난 17일 오전 전남 여수시 예다원 추모공원에 마련된 홍정운군의 묘소에서 아버지 홍성기씨가 홍군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홍군이 잠든 이후, 그의 부모님은 매일같이 이곳을 찾아 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여수/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 17일 오전 전남 여수시 예다원 추모공원에 마련된 홍정운군의 묘소에서 아버지 홍성기씨가 홍군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홍군이 잠든 이후, 그의 부모님은 매일같이 이곳을 찾아 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여수/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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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이 얘기했었죠,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말 하다가 서로 꿈에 대해 물어봤죠. 고민돼서 아무 말 하지 못했는데 이젠 말할 수 있는데 우린 못 만나죠. 널 잃은 슬픈 마음이 표현이 안 돼. 많고 많은 친구 중에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정말.”

전날 내린 눈이 무색하게, 맑았던 17일 오전. 시리게 부는 바람을 가르고 노래가 울려 퍼졌다. 전남 여수시 예다원 추모공원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언덕. 묘지 뒤쪽을 빼곤 막힌 데 없이 탁 트이고 햇볕도 잘 드는 이곳에 잠든 아들 홍정운(18)군에게 아버지 홍성기씨가 틀어준 ‘밤하늘의 별을’이다. 정운군이 좋아한 이 노래를 친구들이 개사해 부른 뮤직비디오인데, 홍씨 부부는 매일같이 이 노래를 아들에게 들려준다.

전날 오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정운군에게 요트 바닥 따개비 제거 잠수작업을 시킨 업체 사장 황아무개씨의 1심 판결을 내렸다. 정운군이 떠난 지 133일 만이다. “피고인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업체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공소가 제기됐다. 피고인은 현장실습 계약을 체결한 고등학생인 현장실습생에게 위험하고 전문적인 잠수작업을 시켰으므로 그에 맞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그러지 못해 주의 의무 위반 정도가 매우 중하고, 그로 인해 사망이라는 참혹한 결과까지 발생시켰으므로 중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업체를 벌금 2천만원에 각각 처한다.”

형사5단독 홍은표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린 4분여, 황씨를 바라보는 홍씨의 얼굴에선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 피고인석에 앉으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황씨의 어깨는 법정을 나갈 때까지도 내내 들썩였다. 정운군은 지난 여름방학 때 친구 소개로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에 있는 이 요트업체에서 고객 응대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를 예쁘게 본 황씨의 제안으로 9월27일부터 현장실습을 시작했다. 그러곤 9일 만에 밤하늘의 별이 됐다.

재판 뒤 <한겨레>와 만난 홍씨가 말했다. “정운이 유품을 찾으러 업체에 갔는데, 사장이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더라고요. 애 죽은 지 2~3일밖에 안 됐는데. 나흘 만에 영업도 재개했어요. 재판에선 정운이가 자발적으로 잠수작업을 했다고도 했어요. 전혀 반성의 기미를 안 보인 거죠.”

누구의 잘못인가

정운군은 태어날 때부터 폐가 약했다. 키 183㎝에 체중 76㎏으로 건장한 체격이 된 건, 유전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폐가 약하다는 걸 알고 그걸 이겨내려고 더 열심히 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다. “별명이 ‘홍정팔’이었어요, 팔 힘이 얼마나 좋은지. 운동도 좋아했고요. 학교 헬스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집에도 역기를 여러 개 사다 놓고 운동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물이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정운군이 다닌 특성화고의 해양레저관광과엔 스쿠버다이빙 교육과정이 있는데, 정운군은 수영장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물을 무서워하는 아들이 ‘자발적으로’ 잠수작업을 하겠다고 했다는 요트업체 사장의 주장을 아버지는 믿을 수가 없다.

1심 판결문은 “잠수자격증도 없고, 관련 교육도 받지 못한 피해자가 전문 지식이 있는 감독자도 없이 혼자 작업을 하는 가운데 부력조절기의 사용법을 알지 못해 부력조절기를 벗었고, 납 벨트를 벗지 않은 상태에서 오리발도 벗자 그 순간 잠수에 따르는 전형적인 위험이 발생해 가라앉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는 피고인의 온전한 부주의로 보아야 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기는 어렵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16일 오후 이순신마리나에 정박된 요트들 사이로, 홍정운군이 작업하다 숨진 배(앞에서 둘째)가 보인다. 여수/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6일 오후 이순신마리나에 정박된 요트들 사이로, 홍정운군이 작업하다 숨진 배(앞에서 둘째)가 보인다. 여수/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하지만 애초 여수해경의 수사 내용은, 요트업체 사장의 책임을 밝혀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0월6일 저녁에, 현장실습 나간 학생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으니 대응을 좀 해달라는 전교조 요청을 받고 다음날 아침에 바로 여수로 갔어요. 가면서 기사를 봤는데, 정운군이 미숙해서 사고가 난 것처럼 돼 있더라고요. 사고 현장을 확인하고 해경에서 조사 내용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웨이트(납 벨트. 잠수복을 입으면 부력이 커져 물속으로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착용한다)를, 그것도 잠수복도 안 입고 래시가드 차림으로 12㎏(판결문은 11.2㎏)을 찼는데 정운군 잘못이다? 너무 이상해서 조사팀에 ‘다이빙 하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니까 아무도 안 한다는 거예요.”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임동헌 광주전자공고 교사가 말했다. 임 교사는 스쿠버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판결문과 아버지, 임 교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운군은 오전 9시27분께부터 30분가량 수영복과 래시가드, 그러니까 사실상 맨몸 차림으로 배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배를 계류장에 묶어둔 줄을 잡은 채였다. 그러다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계류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요트업체 사장 황씨가 인근 다이빙 업체에서 장비를 빌려왔다. 하지만 그 속에 잠수복은 없었고 웨이트는 너무 많았다. 다이빙을 배우기는 했지만, 황씨도 초보 수준으로 관련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운군은 맨몸에 웨이트 12㎏, 부력조절기, 오리발, 수경, 호흡기, 공기통 등을 착용한 채 오전 10시36분 다시 물에 들어갔다. 하지만 무거운 웨이트 때문에 부력조절기에 최대한 공기를 넣어도 안정적으로 떠 있기가 힘들었고, 몸을 움직이기 불편하니 부력조절기와 오리발을 벗어 계류장에 있던 황씨에게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는 바로 수심 7m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임 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명구조 훈련할 때도 특전사, 해군 유디티(UDT) 정도나 맨몸에 웨이트 2㎏을 차고 하지, 일반인은 웨이트 없이 해요. 특수부대도 수면에서 가라앉지 않고 2㎏을 버티기가 얼마나 힘든데 12㎏이라니. 이게 어느 정도 무게고 다이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수중에서 난 사고라면 전문가한테 물어봐야죠. 해경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다이빙 전문가들이 있는 해경 특수구조대가 있는데, 심지어 같은 조직인데. 어떻게 이렇게 성의 없이 조사하냐고 내가 따지고, 정운군 아버님도 이러면 발인 못 하겠다고 하셔서 해경이 특수구조대를 불러 10월7일 밤늦게까지 다시 조사를 하게 된 거예요. 8일 새벽에 빈소에 와서 설명을 하더라고요. 그제야 웨이트 문제가 다뤄졌고, 정운군 과실이 아니라 업체 사장이 안전관리를 못해 사망사고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드러난 거죠.”

이에 여수해경은 “공식적으로 나간 보도자료에는 피해자의 ‘부주의’라는 단어가 없고, ‘납 벨트 무게를 이기지 못’했고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나갔다. 실황조사(현장조사) 때 해경 구조대를 투입해, 가족도 참관한 상황에서 사고 당시와 똑같은 차림으로 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이 보도자료는 임 교사가 지적한 10월7일이 아니라 12일에 배포된 것이다. 해경 구조대를 투입해 현장조사를 한 날도 10월8일이다.

여수해경이 지난해 10월8일 바닷속에서 홍정운군이 착용했던 납 벨트를 인양하고 있다. 여수해경 제공
여수해경이 지난해 10월8일 바닷속에서 홍정운군이 착용했던 납 벨트를 인양하고 있다. 여수해경 제공

그 전에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순간은 많았다. 따개비 제거 작업은 크레인으로 배를 육상으로 끌어올려 해야 한다. 그런데 이순신마리나가 자리 잡은 신도시 웅천동 주민과 호텔들이 악취와 분진 등으로 민원을 제기했고, 여수시는 이를 받아들여 육상에서 따개비 제거 작업을 금지했다. 요트 바닥에 따개비가 많이 붙으면 배가 무거워져, 속도가 느려지고 연비도 나빠진다. 요트 업체들은 육상 작업 대신 수중 작업을 해왔다. 수중 따개비 제거는 해양환경관리법 등의 위반 소지가 있지만, 여수시는 제대로 단속하거나 점검하지 않았다.

학교가 현장실습을 부실하게 운영·관리한 정황도 여럿이다. 지난해 10월20일 교육부·전남교육청 공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학교는 실습업체와 함께 개발해야 하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학교 단독으로 만들고 업체에 이를 공유하지 않았다. 현장실습 프로그램엔 실습목표, 기간, 내용 등이 담기는데, 이 학교는 ‘서류’만 만들었을 뿐 실제로 현장교육이 운영되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학교는 실습기업 등록도, 실습일지 작성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의 무관심은 ‘산업체 현장실습 참여 동의서’에서도 확인된다. 정운군 가족들이 보관 중인 ‘현장실습 산업체 방문조사 카드’ 사본엔 “기존 승선 보조 및 고객 응대 서비스 업무를 이어서 하기를 요구함”이라고 적혀 있다. 아르바이트할 때 했던 업무를 계속하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학교가 작성한 ‘산업체 현장실습 참여 동의서’엔 이런 요구사항은 담겨 있지 않다. 그저 “레저 전반적인 업무 및 선박·요트 점검”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황씨에게 잠수장비를 빌려준 다이빙 업체도 짚어볼 대목이다. 다이빙 업체가 장비를 빌려주려면 그 장비를 사용하는 사람의 자격증(인정증)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업체는 그러지 않았다. 게다가 사장은 마침 가게를 비워둔 상황이어서, 황씨의 전화를 받고 장비를 알아서 챙겨 가게 했다.

갈수록 약해지는 안전장치

다른 산업재해와 마찬가지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그때마다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대체로 실효성이 없거나 이전보다 더 안전장치가 완화됐다.

제주 이민호군 사고 뒤인 2018년 교육부는 ‘학습 중심 현장실습’만 허용하겠다며 노동자이자 학생이던 실습생 신분을 학생으로 못박았다. 또 노무사가 사전 현장 실사를 하고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이 최종 인정하는 ‘선도기업’ 중심의 현장실습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1년 만에 이 지침을 바꿔, 실습운영위 심사와 학교 심의만 거치면 영세업체도 ‘참여기업’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실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실습업체 전문가를 ‘기업현장교사’로 지정해 현장실습생 지도와 안전 관리를 맡기면서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다시 1년여 만인 2020년 3월엔 참여기업 선정 때 실습운영위 심사를 완화하도록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정운군이 일했던 요트업체는 참여기업이었고, 업체 사장은 기업현장교사였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정운군 사망 이후 지난해 말 내놓은 대책에서 학습 중심 현장실습을 유지하는 한편, 현재 70%인 기업의 인건비 부담 비율을 40%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줄어든 30%는 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해(나머지 30%는 정부), 기업이 그 비용을 현장실습생의 안전 확보에 활용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없었다. 참여기업의 현장실습 허용도 유지했다.

정부의 이런 대응은 안전하게 교육을 할 만한 기업, 즉 선도기업에 선정될 만한 업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 부담은 덜면서 기업현장교사 수당이라도 받으려는 곳은 대체로 참여기업, 즉 영세한 업체들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배경은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전국 직업계고 졸업생 7만8994명 가운데 취업한 학생은 28.6%(2만2583명)로, 대학 진학 학생(45%, 3만5529명)보다 40% 가까이 적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지난해 10월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지난해 10월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와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등은 현장실습생을 ‘학생’만이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하는 게 안전한 현장실습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일을 해도 노동자가 아니어서, 최저임금·유급휴가 보장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을 규정한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해 기본 권익을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이들은 산업안전 고위험 직종의 경우 5인 미만 사업장 현장실습 금지, 참여기업 선정 및 관리·감독 강화, 중대재해기업 처벌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로선,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찾고 싶으니 안전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 단체와 전교조 등은 지금의 현장실습 제도 폐지를 촉구한다. 그 대신 3학년 2학기 12월 한달을 전국 동시 취업기간으로 설정하고, 정부가 만든 취업 플랫폼을 통해 학생과 질 좋은 일자리를 연결해주자고 주장한다. 학교에 직업교육 예산을 줄 수가 없어 기업에 그 교육을 맡기려고 1963년 도입된 현장실습이 1970년대 이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변질됐고, 2000년대 이후 대체로 조기 취업과 취업률에 초점을 맞추면서 교육 기능은 상실하고 현장실습생의 안전도 내팽개치게 됐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임동헌 교사는 “현장실습 나간 곳이 대체로 열악해, 실습생의 근속기간은 굉장히 짧고, 현장실습 나갔다가 오히려 취업 의지가 꺾여 돌아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도 많다”며 “직업교육을 받을 절호의 기회가 3학년인데, 그때 현장실습 나가서 소모품으로 이용당하는 것보단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낫다. 12월 한달 동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채용을 확정하고 1월부터 정식으로 취업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달라진, 무너진, 그 자리에서

“장례 치른 뒤로 애기 엄마가 하루도 안 빼놓고 정운이 사망 시각에 맞춰서 여기 와요. 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고. 이 사진은 애기 엄마가 항상 갖고 다니는 거.”

비석 앞에 세워진 5×7 크기의 정운군 액자를 가리키며 아버지가 말했다. 엄마는, 이 액자를 살아 있는 정운이처럼 여긴다. 아침에 “일어나” 하고 깨운 뒤 추모공원에 올 때 데리고 와 비석 앞에 놓는다. 그 앞에서 두세 시간, 정운군이 좋아하던 노래를 들려주고 하고 싶은 얘기를 편지에 쓴다. 돌아갈 땐 “정운아, 집에 가자” 하면서 데리고 가고, 예전 그대로 정리해둔 정운군 방에 데려다준다. 밤이면 그 편지를 태워 하늘로 보낸다. 액자는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준 뒤 재운다. 아들이 추울까 봐, 엄마는 비석에도 담요를 덮어주고 수시로 바꿔준다.

지난 17일 오전 전남 여수시 예다원 추모공원에 마련된 홍정운군의 묘소에서 아버지 홍성기씨가 홍군의 사진을 쓰다듬고 있다. 비석의 담요는 홍군의 어머니가 둘러준 것이다. 여수/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 17일 오전 전남 여수시 예다원 추모공원에 마련된 홍정운군의 묘소에서 아버지 홍성기씨가 홍군의 사진을 쓰다듬고 있다. 비석의 담요는 홍군의 어머니가 둘러준 것이다. 여수/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사고 이후 가족들은 8주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무너진 세계가 그리 쉽게 회복될 리 없다. 4남매 중에서도 유독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고, 부모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면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해 용돈을 드릴 정도로 속이 깊은 아들이었으니 오죽할까.

“정운이가 대학 안 가고 사회에 빨리 나가서 돈 벌어야겠다고는 했지만, 뭘 할지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요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이 생겼어요. 자기도 이런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요. 그러더니 얼마 안 지나서 자격증을 4개나 따더라고요, 60만~70만원씩 하는 비용도 우리한테 말 안 하고 아르바이트해서 다 충당하고. 마지막으로 통영에서 본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곤 ‘아빠, 저도 이제 요트 사업 할 자격을 갖췄어요’라고 전화가 왔어요. 네가 이 일을 하고 싶다면 아빠도 도와주겠다, 나중에 같이 요트를 사보자고 했죠.” 하지만 동력수상레저기구 일반조종 1급 요트 면허, 용접기능사 같은 정운군의 자격증 4개는 이제 빛을 볼 수 없다.

그게 마음에 걸렸을까. 정운군의 친구 김호영(19)군은 꿈을 바꿨다. 학교 헬스장을 오가며 한두 마디씩 나누다, 서로 닮은 데가 많아 고민을 나눌 정도로 친해진 사이다. 김군은 원래 굴이나 돔 양식업을 하고 싶었다. 정운군은 요트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이 생겼다. 이제 김군은 그 꿈을 대신 이루려고 한다. “그 친구, 하고 싶은 거 없이 살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자마자 가버린 거잖아요. 그냥,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저는 정운이 대신해서 꿈을 이뤄주고 싶어요. 원래 하려던 일은 아니지만, 빡세게 돈 벌어서 30~40대가 되면 요트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아들 보내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하지만 높은 분들 와서 만나자고 하면 다 만납니다. 정운이가, 이런 일이 절대 잊혀져선 안 될 일이니까요. 이민호군 아버님 이상영씨가 ‘직업계고 현장실습 피해자 가족 모임’ 대표인데, 내가 그랬어요. 여기 일 좀 정리되고 나면 나도 모임에 나서서 충분히 일을 보겠다고.” 무너진 세계에서, 아버지는 다짐했다.

노을이 내려앉던 여수 이순신마리나, 정운군이 숨진 바다 앞 추모 공간에 한 친구가 써서 묶어둔 리본이 펄럭였다. “보고 싶다 홍정팔. 또 만나면 피시방, 노래방, 재밌게 하루 동안 주구장창 그것만 하고 놀자.”

지난 16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에 요트 바닥 따개비 제거 잠수작업을 하려다 숨진 홍정운군을 추모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여수/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 16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에 요트 바닥 따개비 제거 잠수작업을 하려다 숨진 홍정운군을 추모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여수/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순천 여수/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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