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 등이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중증장애인인 저와 아내 그리고 29개월 아이까지 온 가족이 확진돼 16일 동안 격리됐습니다. 아이는 열이 나고 아픈데도 어린이용 해열제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도 확진자 집 방문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아이 엄마는 ‘아이가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한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박현·47)
코로나19 확진자가 2일 0시 기준 21만9241명으로 폭증하는 가운데, 장애인들이 장애인 확진자를 집중관리군으로 지정하고, 활동지원사가 이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들은 2일 오전 10시40분께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역 현장에서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긴급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더이상 생명을 방치하지 말고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방역체계를 구축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홀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으러 가다 쓰러져 숨진 중증시각장애인 오아무개씨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장애인 확진자들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코로나19 장애인 방치·책임전가 규탄 기자회견’에서 박현(47)씨가 온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됐던 자신의 사례를 말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선 장애인 당사자들이 코로나19에 확진된 경험을 증언하며 현행 방역체계가 가진 문제를 지적했다. 자신과 아내가 모두 중증장애인인 박현(47)씨는 “29개월 아이가 지난달 15일 확진 받은 후 일주일 간격으로 아내와 제가 연달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내와 저 모두 활동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활동지원사가 방문을 거부했다”며 “보건소에서는 확진됐을 때와 격리해제 할 때 두 번 확인 전화만 했을 뿐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는 “정부에서 장애인 확진자에 대해선 활동지원시간을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활동지원사들이 코로나 전염 우려 등으로 방문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가족이 없는 장애인은 그냥 죽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들은 장애인 확진자가 방치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현재 나이 기준으로 분류되는 ‘집중관리군’에 장애인을 포함하고, 활동지원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장애인 방치를 막기 위해선 장애인을 모니터링 대상인 집중관리군에 포함하고, 광역사회서비스원과 보건소의 협력으로 활동지원사들이 코로나 걱정 없이 장애인 확진자 집에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주석 전장연 건강권위원회 간사는 “잇따르는 장애인 확진자들의 죽음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평소 의료체계에서 배제 받고 차별받던 장애인들의 불평등이 심화한 결과”라며 “장애인에 대한 공적돌봄 확충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오늘 중으로 재난 상황 장애인 돌봄체계 구축 등 23가지 요구사항이 담긴 요구안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 보내고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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