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일인 9일 아침 8시께 서울 동작구청 1층에 마련된 노량진2동 제4투표소에 10여명이 줄을 서 있다. 이곳 선거사무원은 아침 6시부터 8시께까지 100여명이 투표했다고 말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고민 많이 했어요.”, “투표장 나오기 전까지도 고민했어요.”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9일 <한겨레>가 투표소 곳곳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고민’이라는 단어를 입에 많이 올렸다.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요 후보자들의 단점이 부각되고, 선거 내내 네거티브가 공방이 이어지다 보니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다보니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들은 새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갈등을 통합하고, 약속한 것은 지키는 리더십을 보여달라”며 다양한 바람을 피력했다.
종로구 청운효자동에서 투표한 김아무개(76)씨는 “약속한 공약만 지켜주면 된다. 앞에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이 그런 걸 지키지 않았잖아”라고 말했다.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곽희운(35)씨는 “후보마다 지킬 공약인지, 그냥 낸 공약인지가 조금은 보이더라”며 “고민 끝에 참여한 대선인 만큼 당선자는 책임감 있게 공약을 지켰으면 한다”고 했다.
20·30대 청년 유권자들은 지금의 정치를 ‘갈등정치’, ‘혐오정치’라고 규정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대통령’을 바랐다. 영등포구 당산2동에 사는 양아무개(27)씨는 “세대별로, 이념별로 갈등하는 상황이 많아서 이를 통합하는 당선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남구 일원3동에서 투표한 오영은(30)씨는 “돈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 여성과 남성, 젊은 사람과 노인을 나누지 말고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할 수 있는 대통령을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20·30대 여성들은 당선자가 ‘젠더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아무개씨(30)는 “젠더갈등을 정치에 이용하는 등 혐오정치를 펼치는 것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며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갈등에 불을 지펴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은 이제 사라져야 할 때다”라고 했다. 대학원생 한아무개(26)씨는 “정치인들이 정치 공학적으로 젠더 이슈를 사용해왔는데, 당선자는 남녀 갈라치기를 그만두고 통합의 길을 걸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일인 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전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잠실본동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대를 가리지 않고 ‘집값만은 잡아달라’는 호소는 두루 나왔다. 김아무개(50)씨는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펼치길 바란다. 집값이 너무 올랐다”고, 어린 자녀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김아무개(40)씨는 “저희 또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는 부동산 문제다. 서민도 집 살 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긴장된 국제정세를 의식한 듯 한반도 평화와 강력한 외교력을 주문하는 시민도 있었다. 아내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이정병(67)씨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안보가 중요하다. 여러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는 당선자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아무개(29)씨는 “새 대통령은 국방력을 강화하고 자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고 복지를 확대하는 당선자의 모습을 바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수어통역사로 일하는 황선희(38)씨는 “청각장애인들이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수화통역 화면이 너무 작다고 하더라.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 등이 기자회견이나 브리핑을 할 때 늘 옆에 수어통역사가 서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바뀔 때가 됐다”고 했다. 직장인 도아무개(29)씨는 “최근에서야 면역항암제가 건강보험에 포함됐는데, 의료복지 개선을 고민하는 당선자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기준 3251만5203명이 투표를 마쳐 73.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5일 1632만3602명이 참여한 사전투표(36.93%)를 비롯해 재외국민·선상·거소투표 집계를 반영한 결과다. 19대 대선 동시간대 투표율 70.1%보다 3.5%포인트 높은 수치다.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일인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마련된 역삼1동제2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치고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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