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교 동창 스폰서에게 금품·향응 등을 받은 대가로 수사 편의를 봐준 이른바 ‘스폰서 검사’ 김형준(52) 전 부장검사를 또 다른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출범한 공수처가 직접 기소한 첫 사건으로 검찰 판단을 일부 뒤집은 결과이기도 하다.
공수처는 수사 편의를 봐준 대가로 1100만원가량의 뇌물과 향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김 전 부장검사를 불구속기소했다고 11일 밝혔다. 공수처는 지난해 7월, 김 전 부장검사와 그의 옛 검찰 동료였던 박아무개 변호사를 각각 뇌물수수와 뇌물공여 혐의로 입건해 수사해왔다. 김 전 부장검사는 검찰 재직 시절, 박 변호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수사에 편의를 봐주고 금품 등을 받은 의혹을 받는다. 공수처는 이날 박 변호사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15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 단장으로 일했다. 금융위원회는 그해 10월 박 변호사의 미공개정보 이용에 따른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을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했고, 이 사건은 김 전 부장검사 부서에 배당됐다. 김 전 부장검사는 이듬해 1월 예금보험공사 금융부실책임조사본부장으로 인사이동하기 직전, 소속 검사에게 박 변호사를 조사하게 했다. 인사이동 뒤에는 중·고교동창인 ‘스폰서’ 김아무개(52)씨 횡령 등 사건 변호를 박 변호사에게 부탁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박 변호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은 2017년 4월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앞서 김 전 부장검사는 스폰서 김아무개씨의 수사 편의를 봐주며 금품·향응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이번에 공수처가 기소한 혐의는 2016년 검찰이 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을 수사하며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고 종결한 내용이다. 당시 대검찰청은 박 변호사 사건에서 김 전 부장검사의 수사 무마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낸 바 있다.
검찰이 종결한 이 사건은 2019년 10월 ‘김 전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 범죄혐의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며 스폰서 김씨가 김 전 부장검사를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는 이듬해 10월 김 전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지난해 6월 이 사건을 공수처로 넘겼다.
공수처는 2017년 박 변호사가 검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는 과정에서 김 전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에게 2016년 3월과 4월께 두 차례에 걸쳐 93만5천원 상당의 향응을 받고, 그해 7월 천만원 상당을 받은 것이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수처는 “피고인들은 김 전 부장검사 인사이동에 따라 ‘직무관련성’ 및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뇌물죄 ‘직무관련성’ 및 ‘대가관계’에 관한 대법원 판례 등을 근거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인사이동 뒤지만 김 전 부장검사는 남부지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스폰서 김씨 쪽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공수처는 김 전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 사이 일부 돈거래에 따른 뇌물수수 혐의는 불기소 처분했다. 공수처는 “고발인(스폰서 김씨)은 기소사실을 제외하고 나머지 3차례에 걸친 4500만원 금전 거래도 뇌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피고인들의 관계, 돈을 빌리거나 빌려준 동기, 변제 및 변제 시점 등을 고려해 불기소했다”고 밝혔다. 김씨 쪽 변호인은 “대검에서 덮은 사건을 공수처가 ‘1호 기소’ 사건으로 처분한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불기소된 부분도 공수처가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앞으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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