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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소수자를 위한 성형외과의,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다

등록 2022-03-12 08:59수정 2022-03-12 15:20

[한겨레S] 뉴스분석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교수 인터뷰

‘성확정 수술’하는 성형외과 의사
트랜스젠더 10명중 4명 극단시도
또다른 방식으로 사람 살리는 것
“수술 뒤 심리케어 체계도 갖춰야”
김결희 서울강동성심병원 성소수자 클리닉 센터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진료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결희 서울강동성심병원 성소수자 클리닉 센터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진료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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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26일 오전, 의사 김결희(41)는 자신이 전날 수술했던 환자가 쉬는 병실로 회진을 갔다. 병실 한쪽 창문 위에 숫자 ‘2’, ‘2’, ‘5’ 모양의 금빛 풍선 셋이 올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영어로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다. “어제 생일이셨어요?” 김결희가 환자의 배우자에게 물었다. “어제 2월25일은 제 파트너가 다시 태어난 날이에요. 이제는 매년 이날이 이 사람 생일이 될 겁니다.”

김결희는 성형외과 의사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의사’라고 했을 때 성형외과 의사를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결희는 이때부터 자신을 ‘사람 살리는 의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가 대하는 환자들은 ‘성확정 수술’(성전환 수술)을 받는 트랜스젠더다. 수술받은 날을 생일이라고 했던 이는 성확정 수술을 받았던 트랜스남성(출생 때 지정된 성별은 여성이지만 성별정체성은 남성인 사람)이었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간다는 것

내가 생각하는 성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 몸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혐오감, 내가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것을 확인할 때마다 오는 불편함, 즉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는 트랜스젠더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국내 트랜스젠더 10명 중 4명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2018년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 연구). 성소수자의 성확정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김결희는 이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에 맞는 성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수술로 돕는다. 트랜스젠더가 받는 성확정 수술은 자궁과 난소, 고환 등 생식 기능과 관련된 신체 기관을 제거하거나 재건하는 수술부터 가슴 절제·확대술, 안면윤곽 성형술이나 목젖 성형술까지 다양하다.

김 센터장의 가운에 달린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인 배지. 김혜윤 기자
김 센터장의 가운에 달린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인 배지. 김혜윤 기자

지난달 28일 그가 임상조교수로 일하는 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를 찾았다. 병원 내 다른 공간은 흰색 등 무채색이 지배하는데 이곳만 색깔이 다양하다. 대기 공간의 벽은 파란색이다. 입구 바로 옆에는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팻말이 걸린 화장실이 있는데, 파란 출입문을 열면 변기와 보조 손잡이, 세면대가 갖춰진 1인 화장실이 보인다. 성별 이분법을 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김결희의 진료실은 더 다채롭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6색 깃발(프라이드 플래그)과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상징 깃발이 진료실 벽면의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다. “환자들이 깃발 보고 별 반응은 안 하던데요. 보고도 ‘으음’ 하면서 넘어가더라고요.” 그러나 김결희에게 진료를 받은 한 성소수자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원장님 책상의 무지개 깃발이 감동적이었다”고 적었다.

20살 의대생 김결희는 자신이 성소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될 줄은 몰랐다. 의대 교과 과정에 성소수자 진료와 관련된 과목은 없었다.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를 마쳤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땄다. 그는 강동성심병원 교수로 지내던 중 가슴 수술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 연수를 갔다. 보스턴은 미국 내에서도 성소수자 비율이 5위 안에 드는 지역이다. 펠로로 일하던 병원 의료진 중에서도 성소수자가 많았고, 가슴 축소·절제 혹은 확대 수술을 받으러 오는 성소수자는 더 많았다. 자연스럽게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개인병원에서 일하던 김결희는 성소수자에 의해 ‘발견됐다’. 가슴 절제 수술을 받고자 하는 트랜스남성이 성형외과를 전전하다가 김결희를 찾아왔다. 아직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후기가 올라온 적 없는 김결희에게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도 모험이었다. 김결희의 첫 국내 트랜스남성 환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긍정적 평가를 담은 수술 후기를 올렸고, 성소수자 사이에서 김결희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성소수자에게 ‘발견된’ 의사

지난해 2월 서울강동성심병원에서 성확정수술을 마친 성소수자 환자의 병실에 걸려 있는 ‘생일 축하’ 장식. 김결희 제공
지난해 2월 서울강동성심병원에서 성확정수술을 마친 성소수자 환자의 병실에 걸려 있는 ‘생일 축하’ 장식. 김결희 제공

김결희는 약 3년 동안 두 곳의 개인병원에서 300명이 넘는 성소수자의 가슴재건술을 했다. 자연스레 성소수자의 앨라이(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연대하는 비성소수자)가 됐다. 트랜스남성 뮤즈(30)는 2019년 가슴 절제 수술을 받으며 김결희와 인연을 맺었다. 이제 둘은 마음을 터놓는 친구 사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절 대해줬어요. 제가 수술을 받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도록 정말 많은 노력을 해주셨어요. 수술을 받고 나서도 수술 부위에 흉터가 날 것 같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하라고 했어요.” 뮤즈는 2019년 어느 날 김결희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때 30∼40명의 성소수자들이 모였다고 한다. “결희쌤 혼자 ‘비퀴어’였고 그날 완전 퀴어파티가 열린 거죠. 저희끼리 자연스럽게 고민도 나누고 재밌게 놀았어요.”

성소수자에게 김결희 같은 의사는 흔치 않다. 이들은 여전히 병원에서 혐오와 차별을 겪는다. 뮤즈의 연인 모니카(25)는 말한다. “제 애인이 트랜지션(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는 성별로 살기 위해 신체 특징 등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준비하면서 한 병원을 찾게 됐는데, 상담실장이 제 애인을 두고 ‘얼굴이 여자같이 생겼네, 예쁘게 생겼네’라며 갑자기 외모 평가를 하더라고요. 성소수자가 많이 찾는 병원인데, 그렇게 편견 어린 말을 하다니…. 불쾌했죠.”

김결희는 단순히 성소수자를 진료하는 병원을 넘어 성소수자 혐오가 없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전에 있던 성형외과에서 자꾸 성소수자분들이 저에게 찾아오니까 병원 입장에서는 이 분야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면서도 성소수자 진료하는 병원으로 낙인찍히면 다른 사람들이 안 올 것 같으니까, 저한테 병원 이름 빼고 제 이름으로만 성소수자한테 광고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에 제가 원래 있었던 강동성심병원으로 돌아왔죠. 큰 꿈을 갖고.”

김결희 서울강동성심병원 성소수자 클리닉 센터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진료실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결희 서울강동성심병원 성소수자 클리닉 센터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진료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결희의 노력으로 강동성심병원은 지난해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의료 환경을 제공하는 엘지비티큐플러스(LGBTQ+) 센터를 열었다. 성소수자에게 정신과 상담부터 성확정 수술, 사후 관리까지 종합적인 진료를 제공한다. 성소수자의 성확정 수술에는 정신과부터 성형외과, 비뇨기과, 외과, 내분비내과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요한 만큼 병원의 모든 과에서 성소수자 진료를 담당하는 ‘앨라이 닥터’가 한명씩 지정돼 있다. 이들의 의사 가운엔 의술의 상징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뒤에 무지개가 떠 있는 배지가 달려 있다. 지금까지 10명 이상이 이곳에서 성기 재건술을 받았고, 3월까지도 매주 같은 수술이 예약돼 있다.

“거기 여성분” 같은 호칭 없는 병원

김결희와 함께하는 의료진도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성소수자분들 가운데는 법적 이름과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도 많고,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법적 성별이 다른 경우도 많잖아요. 저희 병원은 내부 시스템에 이분들이 원하는 이름과 성별을 입력하고 있어요. 환자분들이 차는 팔찌에도 그렇게 인쇄되고, 의료진들도 그렇게 불러요.” 2년차 레지던트 이동현(30)이 말했다. 이곳에는 ‘거기 여성분’ 같은 호칭도 없다. “병원 직원들은 대기 중인 환자가 자길 부르는 걸 못 들으면 가끔 ‘파란 옷 입은 남성분’ 이런단 말이에요. 혹시나 제가 휴무라 다른 과에서 대타로 근무하면, 절대 그러지 말라고, 꼭 이름으로 부르라고 신신당부해요.” 성형외과 외래 직원 변지유(27)의 말이다.

외국 원문을 뒤져가며 독학해온 김결희는 지난해 전문의 10여명과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두 번의 세미나를 마쳤다. 동료들과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성소수자 당사자와 의료진을 위한 책도 낼 생각이다. 서울대 의대는 지난해 성소수자 진료와 관련된 교과 과목을 개설해 강동성심병원 등에서 실습을 하기도 했다.

진료실 입구 ‘이곳에 온 모두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진료실 입구 ‘이곳에 온 모두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사람을 살리는 의사’ 김결희는 알고 있다. 성확정 수술만으로 트랜스젠더의 목숨을 살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성확정 수술을 마친 트랜스젠더의 자살률도 꽤 높다는 사실을. 아직 자신의 환자를 잃은 적은 없지만 늘 불안하다. “환자분들이 수술 전에는 기분이 좋다가도, 마치면 허무해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수술 후에도 꾸준한 심리 상담과 케어가 필요한 이유예요. 아직 우리 병원은 그 단계까지 못 갔지만, 꼭 필요해요.” 성소수자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이 눈에 더 보인다.

그의 진료실 문을 닫자 보이지 않았던 진료실 문 옆 무지갯빛 명패가 시야에 들어왔다. ‘EVERYONE IS WELCOME HERE’(이곳에 오신 모든 분을 환영합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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