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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볼로냐도서전의 외침 “우리는 러시아 폭력에 반대한다”

등록 2022-03-26 08:29수정 2022-03-26 16:43

[한겨레S] 특집
이탈리아 볼로냐 도서축제 참관기

최대 아동도서전 한국관 운영 위해
3년 만에 비행기 타고 현지 참석
이수지 ‘안데르센상’ 대리 수상에
외국대표들과 ‘반전’ 성명도 함께
22일(현지시각) 개막한 이탈리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전시된 책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제공
22일(현지시각) 개막한 이탈리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전시된 책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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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는 맛으로 기억하는 도시다. 생면을 뽑아 라구 소스를 얹은 파스타, 탄산을 품고 있는 레드 와인은 볼로냐라는 이름과 함께 기억한다. 이 도시를 떠올리면 입만 즐거운 것은 아니다. 1088년에 세워졌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을 품고 있다. 기차로 한두시간 거리에 피렌체와 베네치아가 있어서 관광객의 방문은 적지만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대학의 심장이었던 도서관과 해부학 실험실을 방문하면 역사를 바꾼 생각들이 탄생한 흔적을 직접 볼 수 있다. 짜릿하다. 그리고, 여기서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이 열린다.

59회를 맞는 볼로냐 도서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아동도서전이다. 그리고, 이 도서전을 운영하는 회사가 상하이, 뉴욕, 모스크바에서도 어린이 책 행사를 주관하니 전세계의 그림책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볼로냐 라가치상 시상식이 열리고 안데르센상과 린드그렌상도 이 도서전에서 수상자를 발표한다. 세계의 그림책 작가들이 이 도서전을 찾고 주목하는 이유다. 나는 2017년부터 여기서 한국관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간 도서전은 온라인으로만 열렸는데 지난 21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

상을 많이 줘 더 즐거운 ‘볼로냐’

3년 만에 비행기를 타려니 어려운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개막일이 두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주최 측은 실제로 행사를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이탈리아에서 하루에 수십만명의 오미크론 환자가 나왔다. 비슷한 시기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연기를 결정했다. 볼로냐를 가려면 같이 갈 출판사들을 모으고 한국관도 설계해야 한다. 가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격려를 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 출판과에 격리면제 승인 요청을 했지만, 장사하러 가는데 돕기 어렵다고 한다. 반도체 팔고 자동차 파는 사람들은 격리면제 받고 가던데, 책값이 싸다고 무시하는 걸까? 볼멘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시점에도 이탈리아 확진자 수는 많았고, 우리나라는 오미크론이 본격적으로 번지기 전이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40개가 넘는 출판사들이 함께 가곤 했는데 이번엔 숫자가 많이 줄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책과 문화의 축제이면서, 우리나라 책을 외국에 알리고 저작권 거래가 수월하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주최 측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간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표를 예약하려니, 유럽 가는 비행기편이 별로 없다. 팬데믹에 여전히 하늘길 곳곳이 끊긴 것이다. 큰 도시 몇개에 직항이 있지만, 작은 도시들까지 연결되는 연결편이 옹색하다. 어떻게 조합을 해도 볼로냐까지 가려면 20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 와중에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비행기가 러시아 영토를 피해서 지그재그로 날아야 한다. 서울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5시간이 걸렸다. 5시간 공항에서 기다렸다 다시 2시간 비행기를 타고 볼로냐로 가니, 꼬박 하루가 걸렸다. 팬데믹과 전쟁을 뚫고 볼로냐에 겨우 갔다. 가는 길에 읽은 책에, 쥐라기 공룡이 새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이 5000만년이라고 했다. 날개가 없는 우리가 날아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스스로를 위로할 거리를 만들며 공간을 넘어갔다.

도서전은 축제다. 축제의 기본은 여럿이 함께 즐기는 것이다. 볼로냐 도서전에 참가한 나라는 90개국, 참가사들은 1000개가 넘는다. 예년보다 줄어든 수치이지만, 팬데믹의 끝을 조심스럽게 전망하는 자리로는 충분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나라의 훌륭한 작가들이 상을 많이 탔다. 이수지 작가가 픽션에서, 최덕규 작가가 논픽션에서 볼로냐 라가치상 우수상을 받았다.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이수지 작가는 시상식에 함께 오지 못했고 우리 팀에서 대리 수상을 했다.

볼로냐 라가치상 시상식은 사르디니아의 왕, 엔초의 궁전에서 열렸다. 13세기에 지어져 17세기에는 극장으로도 쓰였던 넓은 공간이 볼로냐 도서전이 시작된 곳이다. 축사를 한 교육부 장관은 “우리는 팬데믹보다, 전쟁보다 강하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다. 어린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올해는 60년 전에 시작했던 곳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도서전 대표는 믿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친구들이 참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리고,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이수지 작가를 안데르센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시각으로 밤 10시30분이었는데 실시간으로 소식이 한국으로 건너갔고, 문재인 대통령은 ‘출판 한류의 위상을 드높여서 자랑스럽다’는 축전을 보냈다. 볼로냐 도서전은 상을 많이 줘서 좋다. 거의 100권의 책과 프로그램에 상패가 주어졌다. 상금도 없고, 상패도 비싸게 만든 것이 아니지만, 상을 받고 즐거워하고 함께 축하하면서 축제의 밤은 깊어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도서전 참여자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도서전 참여자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제공

‘검은 구름’에 반대 목소리 높인 이들

팬데믹에 눌려 지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축제를 맘껏 즐겨도 될 법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볼로냐 라가치상 본상을 수상한 캐나다 작가의 <구름 속의 소녀>는 전쟁의 기억과 이미지를 검은 구름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번에 처음 만들어진 ‘비범한 예술가에게 주는 엄청난 상’은 길어진 팬데믹 때문에 벽에 갇혀 2년을 보내야 했던 소년이 공원에서 놀고 싶은 소망을 담은 <공원에 갈 거야>가 받았다. 어린이에게서 희망을 찾겠다고 했지만 아직 현실은 무겁다.

나는, 볼로냐, 프랑크푸르트, 예테보리, 부다페스트, 프라하, 바르샤바, 과달라하라, 상파울루, 타이베이 등 세계 곳곳에서 온 도서전 대표들과 성명서를 읽었다. “우리는 러시아의 폭력에 반대한다.” 테살로니키, 부에노스아이레스, 상하이 등에서는 성명서에 서명을 하지 못했다. 서명만 하고 발표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명백한 폭력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오는 길에 통화한 타이베이 도서전 친구는 볼로냐 도서전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대만 작가의 전시에서 국적을 빼버린 것을 발견하고 크게 상심했다. 이번에 함께 전쟁에 반대한 친구들이 늘 같은 쪽에 있을 수 있을까? 상념에 빠져 있는데, 암스테르담 공항 출국장의 기계가 여권을 거부해 정신을 차렸다. 대한민국의 새 전자여권을 네덜란드 출입국관리관도 처음 보았다고 한다. 예전처럼 이 여권이 세상을 맘껏 누빌 수 있을까? 볼로냐에서 벚꽃을 보았는데, 돌아와 보니 서울에도 벚꽃이 폈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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