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8년 10월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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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법원행정처 비자금 수사…고위법관 격려금으로 사용’(2018년 9월4일 언론 보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한창이던 2018년 9월, ‘비자금’, ‘격려금’이라는 단어가 서초동을 강타했다. 2015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에 배정된 예산을 모아 고위법관 격려금으로 지급했다는 의혹이었다. 사법농단 의혹 가운데 돈과 관련된 유일한 혐의인 만큼, 파장이 컸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이래 대법원 법원행정처 사무실(예산담당관실·재무담당관실) 압수수색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그로부터 3년이 넘은 2022년 2월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서는 그 정체불명의 예산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실무자들의 법정 증언으로 구성된 당시 상황은 이렇다. 2014년 현금성 경비가 부족해졌다. 2013년 이동흡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가 국가 예산으로 지급되는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으로 낙마한 뒤 기획재정부가 관련 지침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대법원 예산담당관(법원 공무원)에게 이런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돈 쓸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법원장 활동비가 필요하니 방법을 찾아보세요.’
각급 법원에 ‘공보관’은 있지만 ‘공보관실’은 없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5개 소속 기관과 전국 87개 법원의 공보관실 운영비로 사용할 것처럼 3억5천만원의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신청했다. 통상 과나 실 단위 조직에서 과자나 커피 등을 구입할 때 쓰이는 소액의 현금성 경비를 비목으로 내세웠다. 기재부는 이 같은 예산안을 신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고 심의·의결을 거쳐 2014년 12월 ‘2015년 대법원 예산안’이 확정됐다.
법원행정처는 이 예산을 30개 법원에 내려보낸 뒤 각급 법원 재무담당자로 하여금 현금으로 인출해 법원행정처 예산담당관실에 그대로 반환하게 했다.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에는 공보관실 운영비로 사용한 것처럼 처리했다.
그리고 2015년 3월6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전국법원장간담회에서 봉투에 담긴 이 돈을 그대로 법원장들에게 지급했다. 법원행정처 고위간부 9명에게도 총 7800만원 정도를 나눠서 지급했다고 한다.
쟁점은 예산의 목적과 그 쓰임이 정당한가다. 피고인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각급 법원에 공보관실은 없지만 공보 업무나 공보관은 존재한다. 그 공보 업무에 관여하는 법원장에게 지급돼 기자간담회, 시민 견학 프로그램과 같은 대외 활동에 사용됐기 때문에 예산이 목적에 맞게 쓰였다는 주장이다. 검찰 수사도 구체적인 사용처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피고인들은 공보관실 운영비를 임종헌 실장이 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일이라고 했다. 임종헌 실장과 함께 예산 업무를 담당한 당시 법원행정처 예산담당관의 2월16일 증인신문 내용을 정리했다.
“2013년 초 국회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특정업무경비가 이슈 된 적 있었죠. 그 결과 현금성 경비가 제한되자 각급 법원에서 사비를 지출하게 된다는 호소가 있었죠.”(박병대 전 처장 쪽 변호인)
“일선으로부터 들었습니다.”(증인)
“검찰은 특활비가 있는데, 법원은 없어서 법원 구성원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임종헌 실장님이 법무부나 국회는 특활비가 있는데, 법원은 없다는 취지로 말씀하시긴 했습니다.”
“‘사법부는 다른 곳처럼 자유롭게 현금성으로 쓸 수 있는 게 없다’는 취지의 말을 아침 회의 때 했다고 했죠?”
“아침만이 아니라 수시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각급 법원에 내려온 현금을 인출해 다시 법원행정처로 운반하는 이례적인 과정이 부담스럽고 이상하다 여긴 재무담당자들의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 계장이 힘들어했어요. 고액이라 농담 삼아 손에다가 가방을 묶고 잤다고 했습니다. 예산을 왜 이렇게 집행하냐, 이렇게 법원장에게 돌려주는 게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산담당관은 ‘임종헌 실장에게 안 된다고 말했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냥 따른 게 잘못이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해당 법원에서 그 예산을 직접 사용하도록 그 방식이 바뀌었고 2019년에는 완전히 폐지됐다.
자책이나 황당함 등은 실무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당시 법원으로부터 예산안을 받아 국회에 제출한 기재부 법사예산과 소속 공무원은 황당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공보관실이 존재하고 그 사정이 열악하다는 법원 쪽 설명을 믿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공보관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 돈이 특정 직원에 대한 격려금으로 쓰였다면 기재부 집행 지침에 맞지 않는 것이다. 격려금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법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예산을 운영하는 건 “솔직히 말해 처음 본다”고 했다. 각급 법원에 배정한 돈을 다시 현금으로 찾아 ‘백’(Back)시키는 집행 방식 또한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2월18일 당시 기재부 공무원의 증인신문 중 한 대목이다.
“(법원행정처 예산담당관이) 공보관실 운영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공보관실은) 각급 법원의 대외 홍보 역할을 하는 부서인데 학생들이 법원에 견학하러 왔을 때 학용품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열악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예산을 넣어주게 된 겁니다. 애들 오면 학용품 사줄 돈도 없다고 해서 넣어준 거지, 이렇게 돈을 ‘백’시켜서 할 계획이었으면 넣지 않았죠. 그리고 국가재정법이나 집행 지침에 과운영비의 용처나 방법이 명시됐으니, 당연히 지침을 준수해서 쓸 거라 생각했습니다.”
왜 대법원장이 직접 나눠주게 만들었을까. 2018년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내놓은 해명처럼 ‘처음 편성된 예산이라 편성 경위나 집행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님 대법원장의 ‘생색내기’를 위한 격려금 지급 방식이었을까. 피고인 말대로 예산의 탄력적 사용(전용)으로 봐야 할까. 1심 재판이 막바지를 향해 가는 가운데, 예산 편성부터 집행까지 의혹의 핵심에 선 임종헌 전 실장을 상대로 한 증인신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됐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을 법정 르포 형식으로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