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검사장들이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오수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수사권 폐지 입법을 막지 못하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김 총장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전국 검사장들도 ‘수사권 폐지는 검찰 폐지’라는 입장을 정하고 국회에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이 사안을 논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검찰청은 1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가량 김 총장 주재로 전국검사장회의를 열어 민주당의 검찰 수사-기소 완전 분리 추진에 반대 뜻을 모았다. 회의에는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 예세민 대검 기획조정부장, 전국 검찰청 검사장 18명이 참석했다. 김 총장은 이날 회의 머리발언을 통해 민주당의 수사-기소 분리 추진을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중요한 제도 변화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서는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는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시행된 지 1년여밖에 안 된 형사사법제도가 제대로 안착되기 전에 검찰 수사기능을 완전히 폐지하는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다. 검찰 수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선진법제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검은 이날 회의 뒤 입장문을 내어 “검사장(지검장)들은 지난해 1월 형사사법제도 개편 이후 범죄를 발견하고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고 진실규명과 사건처리의 지연으로 국민들께서 혼란과 불편을 겪는 등 문제점들을 절감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조차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않고 충분한 논의나 구체적 대안도 없이 검찰 수사기능을 폐지하는 법안이 성급히 추진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께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검사장들은 국회에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국회에서 형사사법제도 개선과 관련해 전문가와 국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 제도 개선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12일 예정된 의원총회에서 검찰 수사-기소 분리 추진과 관련한 당론을 모을 계획이다. 검사장들은 “검찰 수사기능을 전면 폐지하게 되면 사건관계인의 진술을 직접 청취할 수 없는 등 사법정의와 인권보장을 책무로 하는 검찰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게 된다. 지검장들은 국회에서 가칭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형사사법제도를 둘러싼 제반 쟁점에 대해 각계 전문가와 국민들의 폭넓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논의를 거쳐 형사사법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했다. 다만 “검찰 스스로도 겸허한 자세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브리핑에서 “국회 입법권에 대한 집단반발로 비춰지는 부분은 죄송하지만 일반 국민들도 입법 관련 의견을 낸다. 적정한 의견 제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초 공지했던 검찰 중립성·독립성 확보 방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지검장은 “이 법안은 검찰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법안이다. 저희가 반성할 부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수사권이 없어지는데 중립성과 공정성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 검사장들 설명”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 구성 요구에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시간벌기용 꼼수”라고 거부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검찰은 집단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여론전을 폈다. 검찰의 이런 행태가 국가공무원이라는 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매우 의문스럽다. 검찰의 요구는 국회 논의를 지연시켜 검찰의 수사권 분리를 막으려는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 반발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박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수사-기소 분리 추진의) 본질은 검찰 수사 공정성”이라며 “검찰총장부터 심지어 법무부 검찰국 검사들까지 일사불란하게 공개적으로 대응하는 걸 보면서 좋은 수사, 공정성 있는 수사에 대해서는 왜 일사불란하게 목소리를 내고 대응하지 않는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검찰 수사-기소 분리 추진 움직임에 “천인공노할 범죄”라고 말한 권성동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를 겨냥해서는 “검찰로 정치보복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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