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아프간에서 온 타마나, 아이샤, 자리나가 점심을 먹은 뒤 교정에서 친구들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울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7일 낮 12시30분께, 타마나(13·가명)는 1학년 8반을 찾아온 아라(13·이하 가명)에게 종이 펭귄을 건넸다. 며칠 전 수업시간에서 타마나가 접은 펭귄에는 아라 이름이 또박또박 큰 글씨로 쓰여 있었다. 자리나, 아이샤도 칠판에 붙여뒀던 종이 동물을 슬아, 소희에게 각각 건넸다. “나 주는 거야? 고마워.” 슬아의 인사에 자리나가 수줍게 웃었다.
2009년생인 타마나·아이샤·자리나는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자, 지난해 8월 한국으로 입국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들이다. 6개월 동안 자립교육을 받은 기여자들 가운데 울산에 정착한 이들은 157명이다. 유아·학령‧청소년기에 있는 85명은 지난달 21일부터 울산의 17개 유‧초‧중‧고교로 배정받아 한국 학생들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한국인 친구들에게 줄 선물 꾸러미를 들고 학교를 향한 등교 첫날 풍경이 화제가 됐다. 28명이 배치된 서부초등학교를 제외하면 각 학교마다 2∼4명의 아프간 자녀가 다니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7일, 세 학생이 1학년으로 입학한 남목중학교를 찾았다. 아프간 아이들의 학교 입학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에서 나오며 시끄러웠지만 아이들은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교육청과 학교도 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아프간 학생 3명은 학교 수업시간의 대부분을 특별반(한국문화적응반)인 8반에서 보낸다. 타마나·아이샤·자리나는 각각 다른 세 반에 배정받았지만, 올해는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8반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운다. 대신 일주일에 6시간은 원래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 한국 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아라·소희·슬아는 아프간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또래 도우미’다. 세명 모두 자원했다. 소희는 “처음에는 ‘왜 오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사정을) 알고 나서는 먼 나라에서 왔으니까 친해져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 학생은 아프간 학생들이 만들어준 우정팔찌를 차고 있었다.
지난 7일 오전 아프간에서 온 자리나, 아이샤가 교실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울산/신소영 기자
울산시교육청은 아프간 학생들의 원활한 적응을 위해 각 학교에 담임교사처럼 학생을 관리하는 여건개선교사와, 시교육청 다문화지원센터 소속 한국어 강사 등을 배치했다. 이날 2∼3교시 수업시간에도 아프간 학생들은 김민정 한국어 강사와 모여앉아 “꽃을 그린다”, “밥을 먹는다”, “손을 씻습니다” 등과 같은 문장을 따라 읽고 받아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세 학생은 공책에 또박또박 글씨를 쓰며 김민정 강사에게 “선생님, 이거 맞아요?”라고 묻거나, “다 했어요”라고 말했다. 김 강사는 “아직 한국어 실력은 유치원생 정도지만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고 싶어 한다. 수업자료를 더 달라는 등 의욕이 넘친다”고 말했다.
아프간 학생들만 한국에 대해 배우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공부’하고 있다. 김막순 교감은 “아프간 학생들이 입학하기 전, 시교육청 차원에서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관리자와 교직원을 대상으로 이슬람 문화 이해교육을 수차례 했다”며 “교장선생님 훈화시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외에도 선생님들이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슬람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목중 교사들은 아프간 학생이 친구들에게 환대받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아프간 학생들의 학교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김예진 교사는 “걱정했던 것과 다르다. 중학교 1학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친화력이 좋은 것 같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하고 껴안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 복도에 있던 한국 학생 서너 명이 교실 창문 너머로 아프간 학생들을 향해 하트를 팔로 크게 그려보이다가, 교실에 들어오기도 했다. 교실 칠판에는 한국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에이포(A4) 용지에 인쇄돼 붙어 있었다.
다만 학생들의 적응을 위해 식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세 학생들은 ‘할랄’에 따라 도축된 육류만 먹는데, 이날 점심 식단은 귀리쌀밥·돼지등뼈감자탕‧안동찜닭‧미역줄기야채볶음·배추김치·천혜향 등 이었다. 라마단 기간이라 금식 중인 자리나를 제외하고 두 학생이 먹은 음식은 미역줄기야채볶음‧밥‧천혜향과 따로 나온 계란 프라이뿐이었다. 이 때문에 급식실에서 돌아온 타마나는 교실에서 따로 싸온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앞으로도 도시락을 계속 싸올 경우를 대비해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들일 계획이다.
김만선 교장은 “어느 나라의 아이든 그 나이에 갖는 감성이 있다. 아프간 학생도 한국 학생도 다르지 않다”며 “앞으로 한국은 점점 더 다문화 사회가 되어갈 텐데, 학생들이 잘 지낼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환대와 우려 공존…천천히 한걸음씩, 아프간인들과 ‘같이 살기’ 모색하는 울산
결혼 후 울산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신춘미(52)씨는 최근 들어 아프가니스탄 아동들이 보일 때면 종종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함께 산책하는 반려견에게 아동들이 관심을 보일 때면 ‘강아지’라는 단어를 알려주기도 한다. 신 씨는 “처음에 주변에서 안 좋게 이야기를 해서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면서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를 도와주다가 이렇게 된 건데, 배척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한국으로 입국한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은 지난 2월부터 울산·경기·인천·충북 등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아가고 있다. 전체 아프간인의 약 40%인 157명은 울산 동구에서 현대중공업이 2년간 제공하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프간인 29명이 현대중공업 협력사 12곳에 취업하며 가족들과 정착한 것이다. 이들이 정착한 지 2개월이 지난 현재, 울산 동구 주민들은 아프간인들과 천천히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지난 7일 오후 2시께, 아프간인 거주 아파트 인근의 한 편의점을 운영하는 ㄱ(62)씨는 “처음엔 걱정했는데 특별한 일은 없었다. 올 때마다 밝게 인사한다”며 “아이들 간식거리를 자주 사러 와서 장사가 더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인 김아무개(21)씨도 “동생이 다니는 학교에 아프간 학생들이 다니는데, 처음에 반대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다들 잘 적응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오는 차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4살 자녀가 있는 ㄴ(30)씨는 “그 나라 종교 특성상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과 다른 생각과 가치관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프간인 아파트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송아무개(64)씨도 “(아프간 아이들이) 이쪽 단지 놀이터로 단체로 와서 한국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며 “요즘은 그런 일이 없지만 나중에라도 부딪칠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아프간인들이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뿐 아니라 기업과 지자체도 지원에 나서고 있다. 아프간인을 고용한 현대중공업에서는 동반성장지원부 실무자들이 아프간인과 지자체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프간인의 의견을 모아 시나 교육청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자체가 하는 각종 지원에 대한 내용을 이들에게 전달한다. 또 원활한 생활을 위해 아프간 자녀들이 학교에 입학할 당시 교복이나 책가방, 교구 등을 같이 사러 가기도 했다. 지난달 21일부터 한달 간 아프간 학생들의 아침 등교 통학버스도 지원한다. 현대중공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의 일환으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국내 정착에 기여하고자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했다”고 밝혔다.
울산 동구청은 학교, 회사에 다니지 않아 한국어 습득과 적응이 다소 더딜 수밖에 없는 성인 여성들의 적응을 도우려 한다. 이달 안으로 울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을 주 2회 시작할 예정이다.
울산/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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