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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국민해양안전관은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팽목항에서 1㎞ 떨어진 이곳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해양안전체험시설, 유스호스텔, 해양안전정원(추모공원), 추모 조형물 등이 있다. 약 10만㎡ 규모로 2019년 9월에 첫 삽을 떴고 현재 공정률은 98% 정도다. 건물 건립은 마무리됐고 외부 조경 등 내부·외부 마감 작업만 남은 상태다. 예산은 270억원 투입됐다.
국민해양안전관은 개관을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매년 25억원으로 추정되는 운영비를 두고 중앙정부(기획재정부)와 지방정부(진도군)가 핑퐁게임 중이다. 기획재정부는 매칭(정부 60%, 진도군 40%) 형태로 운영비를 편성하겠다는 입장이고, 진도군은 전액 국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야기다. 이제부터가 새로운 소식이다. 국민해양안전관의 또다른 문제는 저작물 무단 복제와 기록의 오류다. 어린이문학인과 시민들이 팽목항에 설치한 ‘세월호 기억의 벽’을 무단 도용하고 세월호 참사 타임라인과 당시 상황을 잘못 기록했다. 이에 국민해양안전관 건설을 책임지는 진도군은 <한겨레>에 “(문제가 된 부분의) 철거와 수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2015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팽목항에 세월호 기억의 벽이 만들어졌다. 높이 50㎝, 길이 200m의 방파제에 세월호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새겨진 타일(도자기)을 붙였다. ‘세월호 기억의 벽을 세우는 어린이문학인들’(이하 어린이문학인들)이 전국 26개 지역을 돌며 4767명에게 글과 그림을 받았고 그 타일을 경기도 이천에서 구웠다. 제작에 참여한 김환영 작가는 “시민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설치한 뒤에도) 시민들이 찾아와 꽃과 과자, 편지를 붙여놓았다. 눈물겹고 아름다운 공공시설물이며 주인은 시민이다. 장소·시간성이 중요하기에 함부로 훼손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세월호 기억의 벽은 공공미술품으로서 저작권 등록이 돼 있는 저작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해양안전관의 추모공원 시공사는 세월호 기억의 벽 타일 일부를 무단 복제해 추모공원의 세월호 형상과 그 주변 벽에 붙였다. 원래 타일을 축소·확대하거나 파란 색깔을 입힌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어린이문학인들이나 저작자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임정자 작가는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앞둔 지난 3월 한 시민이 건립 중인 국민해양안전관을 둘러보다가 복제 타일을 처음 발견했다”고 말했다. 시공업체 관계자는 “(세월호) 기억의 벽이 오래 기억되면 좋을 듯해서 그 이미지(타일 그림)를 추모공원에 활용하겠다고 (진도군에) 제안해 받아들여졌다. 타일 사진을 찍어서 새 타일에 인쇄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문학인들은 지난 3월31일 1차 내용증명을 진도군에 보내 항의했다. 저작권 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무단 복제·도용한 설치물을 철거하라는 게 핵심 요구사항이다. 진도군 관계자는 “저작권이 있다는 걸 시공사가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복제 타일의) 철거 여부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팽목항의 세월호) 기억의 벽도 1년 동안 팽목항 방파제에 부착하기로 승인받았다. 그 부분도 행정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재은 작가는 “내용증명에 대한 공식 답변을 진도군에서 받지 못했다. 2차 내용증명을 보낼 예정이며 그 어떤 일로도 세월호 기억의 벽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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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를 인정하고 이미 철거를 결정한 부분도 있다. 붉은 글씨로 추모공원의 벽에 붙여진 세월호 참사 타임라인과 침몰·구조 내용이 그렇다. 추모공원에 적힌 타임라인을 보면, ①09:50 선장 이준석씨와 1등 기관사 손아무개씨 등 선원 6명 구조 ②10:15 최초로 승객에게 대피 통보 “여객선 침몰이 임박했으니 승객들은 바다로 뛰어내리는 상황에 대비하라” ③10:25 세월호 90도 이상 기울어짐 ④11:20 세월호 완전히 침몰 등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①조타실에 있던 선장 이준석씨가 ‘도주’한 시각은 9시46분, 기관사 손지태씨가 도주한 시각은 9시38분이었다. 그들은 승객을 구조하러 온 해경 123정에 먼저 올라탔다. 그리고 ②선원도 해경도 승객에게 대피하라고 통보한 적이 없다. 해경 123정장 김경일씨는 사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승객들에게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경고 방송을 계속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에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는 초동대응 실패(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③세월호는 오전 8시49분 뱃머리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면서 왼쪽으로 넘어졌다. 배는 몇십초 만에 좌현으로 45도 이상 크게 기울어졌다. 무서운 속도로 기울어지다가 10시17분, 우현 난간이 바다에 닿을 정도로 뒤집혔다. 기울기는 108도였다. 결국 ④10시30분, 뱃머리만 남기고 차가운 물속으로 잠겼다. 침몰 시간은 위성조난신호(EPIRB)를 기준으로 한다. 선박이 침몰하면 조난신호를 발신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매년 4월16일 10시30분에 사고 해역을 찾아 선상 추모식을 여는 이유다.
시공사 관계자는 타임라인과 침몰·구조 내용이 틀린 이유에 대해 “(초기) 언론 보도와 보도자료를 참고해서 설계하고 유가족과도 논의했는데 오류가 다 잡히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장동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총괄팀장은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한 면이 있었다. 타임라인 수정 요청을 했고 철거 후 재설치하기로 했다”고 했다. 글씨 색깔도 붉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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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은 의문점이 있다. 추모공원 중앙에 놓인 거대한 노란색 조형물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국화꽃을 손에 들고 가슴이 뚫린 엄마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그 설명을 보면, “맘 조형물의 상부좌대까지의 높이는 9m, 무릎부터 발끝까지의 높이는 3.5m로 참사 발생 시각인 9시35분을 의미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법원 판결문,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등 그 어떤 국가기록에서도 세월호 참사 발생 시각을 9시35분으로 명시한 적이 없다.
참사 발생 시각을 9시35분이라 밝힌 것을 두고 시공사는 “예술적 언어”라고 주장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오전 9시34분 세월호의 침수한계선인 D데크(1층)까지 물이 차올랐고 해경 경비정이 도착해 선원들이 기관실·조타실에서 탈출했다. 해경이 승객을 먼저 구조하지 않았기에 (9시35분을) 참사 발생 시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한데다 조타실 선원들이 도주를 시작한 9시45분에도 퇴선 명령이 내려졌다면 6분17초 만에 승객 모두 탈출할 수 있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기에 시공사의 주장은 객관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한다는 국민해양안전관을 둘러싼 논란과 오류를 보며 한국 사회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되새겨보게 된다. 우리는 ‘망각의 강’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정은주 박현정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