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전경.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민주당은 냉정한 이성을 되찾기를 기원한다”(여환섭 대전고검장), “반민주적 폭주” “초라한 밥상, 누더기 패션쇼” “범죄자 천국의 전조”(검찰 공개 내부게시판 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폐지 입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강행을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은 검찰 내부에서 민주당을 향한 ‘말폭탄’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다. 18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사직서를 낸 김오수 검찰총장과 전격 면담을 가졌지만, 전국 고검장들은 열흘 만에 다시 회의를 열었고 6200여명에 달하는 검찰수사관들도 일부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이다. 검찰은 비공개 내부게시판에 올라오는 수사권 폐지 반대 글들을 날 것 그대로 언론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뜬금입법’을 비판하는 쪽에서도 자성 없이 집단반발부터 하는 검찰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께 김 총장을 만나 수사권 폐지와 관련한 검찰 의견을 청취했다. 앞서 김 총장은 지난 13일 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폐지 방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자 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금은 입법의 시간”이라며 사실상 면담을 거부했고, 김 총장은 그즈음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사직서를 냈다. 박 장관으로부터 구두 보고받은 문 대통이 18일 김 총장 사표를 반려하고 곧바로 면담에 나선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뒤늦게 면담을 수용한 것 자체가 민주당 쪽에 수사권 폐지 입법 강행에 대한 ‘속도조절’ 메시지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검찰 내부 반발은 이날도 계속됐다. 전국 고검장 6명은 지난 8일에 이어 이날 오전 대검찰청에 다시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다. 전날 사표를 낸 김 총장이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와 예세민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회의에 참여했다. 고검장들은 회의에서 일괄 사퇴하는 방안과 시점 등도 논의했다. 여환섭 대전고검장은 “국민 권익과 관련된 기본법을 개정하는데 그 흔한 공청회도 개최하지 않고 학자나 시민단체, 변호사 단체 의견을 무시한 채 2주 만에 추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냉정한 이성을 되찾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검찰수사관들도 수사권 폐지 반대 움직임에 가세했다. 전날 대검에서 모인 수도권 검찰청 사무국장들은 이날 “수사권 분리는 검찰수사관의 지위를 박탈하는 등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안 거부권을 가진 문 대통령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주재할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직접 반대 뜻을 전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권상대 대검 정책기획과장은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대통령과 국회의장께 호소문을 작성해 전달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오는 20일까지 전국 검찰청별로 호소문을 취합해 보낸다는 계획이다. 전국 평검사 대표들은 19일 저녁 7시 서울중앙지검에서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를 열어 수사권 폐지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한다.
언론대응도 관련 부서가 총동원돼 이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실은 18일부터 검찰 비공개 내부게시판인 이프로스에 올라오는 검사들의 글을 오전·오후 하루 두 차례 언론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보관실은 지난 16∼18일 일선 검사들이 이프로스에 쓴 글 20여개를 언론에 당사자 동의를 받아 그대로 공개했다.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은 이날 미국 몽고메리카운티검찰청 현장취재를 통해 검사의 직접수사 기능이 크지 않다는 취지의 언론보도가 나가자 곧바로 반박자료를 내어 “미국 검사가 기소 및 공소유지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증거수집 활동, 즉 수사를 하는 것은 명백하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왜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지에 대한 조직적 반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김학의 별장 성폭행 의혹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해 검찰조직을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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