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등 550여명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삭발식 및 결의대회를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연 가운데 단상에서 삭발을 하던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엄마는 아들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데 겨우 삭발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까짓 것. 목숨도 내놓을 각오인데 그 정도쯤이야…” (황숙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강남지회 사무국장)
19일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효자동 효자치안센터 앞. 선선한 봄바람이 불자 잘린 머리카락이 날려 떨어졌다. 이날 오후 2시께부터 1시간 동안 470여명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삭발식이 진행되는 동안 이영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강동지회 사무국장 등이 써온 글을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낭독했다. “발달장애인에게도 평범한 삶도 가능하다는 선택지를 늘려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가족에게만 전가되고 있는 책임을 국가와 함께 나눠 갖자는 의미의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요구에 동의합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날 오후 1시께부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1박2일 결의대회’를 열고 단체 삭발에 나섰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발달장애인 가족과 당사자, 연대자 등 555명이 현장과 줌 등으로 삭발에 참여했다.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서비스 및 정책의 부족으로 인해서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매년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며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공약에서는 ‘발달지연·장애 영유아를 위한 국가 조기 개입’ 외에 ‘발달장애인 하루 최대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방안을 찾아볼 수 없다”며 결의대회를 개최한 배경을 밝혔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부모, 형제가 없는 세상에서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냐. 더 이상 발달장애인 가족, 중증장애인 가족들에게 이런 아픔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국정과제에 꼭 언급해달라”고 말했다. 부모연대는 지난 2018년 4월에도 209명이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단체 삭발에 나선 적이 있다. 이후 같은 해 9월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발달장애인이 의미있게 낮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주간활동서비스가 도입됐지만, 이용 대상도 제한적일뿐더러 서비스 이용 시간이 짧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삭감되기 때문이다.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발달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확대 △발달장애인 소득·노동·주거·교육·건강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전체 등록장애인 가운데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 등)은 2021년 기준 25만5207명이다. 발달장애인 비율은 2011년 7.3%에서 지난해 9.6%로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만 19살 미만 미성년자 발달장애인은 전체 발달장애인의 22.84%(5만8303명)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등 550여명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삭발식 및 결의대회를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결의대회에 참석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해 “누군가가 우리에게 비문명적인 투쟁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 말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비문명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에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했지만, 우리에게 무슨 자유와 평등이 있었냐”며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할 기회를 갖고, 감옥 같던 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관계 맺기 위해 24시간 지원체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줌으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현장에 참여했다. 장 의원도 삭발에 나섰다. 그는 “발달장애인을 24시간 함께 살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드는 게 국회에 들어온 가장 중요한 소명이라고 생각한 지 2년이 흘렀지만, 여러분이 다시 이 자리에 나와야 할 정도로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 의원은 “다른 의미는 항의의 의미다. 동료 의원님들에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고 싶다는 이유로 삭발한다. 각오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연대는 삭발식 이후 경복궁역을 지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있는 통의동 앞까지 행진했다. 20일에는 장애인 부모들의 참여로 단식농성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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