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왼쪽부터), 강성국 법무부 차관, 진교훈 경찰청 차장이 지난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출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기소 분리를 두고 경찰을 깎아내리는 검찰 행태에 속앓이만 하던 경찰이, 국회 막바지 법안 논의 과정에서 묵언을 깨고 검찰 주장을 적극 반박하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다만 경찰 통제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회의록을 보면, 비공개(18~19일치, 25~26일치)로 진행된 회의에서 진교훈 경찰청 차장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현하는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간 경찰 지휘부는 같은 수사기관인 경찰의 수사력과 인권보호 수준을 깎아내리는 사례들을 전국 검찰이 연일 공개하는 상황에서도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수준의 입장만 밝혀왔다. 그러나 입법 초읽기에 들어서자 검찰 논리를 적극 반박하는 자료들을 제시하며 막판 반격에 나선 셈이다.
“보완수사로 사건처리 지연? 불기소 사건은 6일 줄어”
국회 회의록을 보면, 지난 18~19일 연달아 법안소위에 참석한 진 차장은 법안에 대한 경찰청 입장에 대한 질의에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현하는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등으로 답변했다.
경찰은 지난해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이 요구한 경찰 보완수사가 지연돼 사건처리가 늦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혐의없음)한 사건의 경우 오히려 최종 처분까지 기간이 짧아졌다”고 했다. 지난해 경찰의 불송치 종결 사건 처리 기간은 69.8일로, 2020년 59.6일보다 10.2일 늘어나는 등 사건처리가 늦어진다는 비판이 있었다. 진 차장은 “경찰 자체적으로는 (처리) 시간이 늘어난 것이 맞지만, 검사의 처분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6일 정도 감소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피의자가 검사 결정이 있어야 최종적으로 불기소 처분(2020년 평균 75.8일)을 받았는데, 수사권 조정으로 이 단계가 없어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송치 사건은 검찰 기소까지 1년새 1.7일(69.8일→71.5일)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서도 진 차장은 “1년의 변화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고 2017년도부터 수사 기일이 조금씩 늘고 있다”며 “수사 환경의 변화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의자 인권 강화 등으로 수사 절차가 엄격해진 것도 영향이 있다며 ‘기-승-전-수사권 조정’ 탓을 에둘러 반박한 것이다.
“검찰에 협의회 요청했지만 안 열려…수사역량? 사건 봐야”
경찰은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실무적인 ‘비협조’에 대한 시각도 드러냈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위원이 “현장 경찰관들 사이에서 검찰이 단순 보완할 수 있는 건데도 기계적으로 보완수사를 요구하면서 내려보낸다는 불만 없느냐”고 묻자, 진 차장은 “실무적인 어려움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진 추가 질의로 진 차장은 “수사기관협의회 개최를 (검찰에) 여러 차례 요구했다. 지금까지 협의회 자체는 열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의 후속절차로 ‘검경 수사준칙’(대통령령)이 마련됐고, 수사권 조정 관련 제도 개선 등을 위해 수사기관협의회를 열도록 규정이 있으나, 검찰이 거부해 열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경찰의 ‘수사 역량’에 대한 질문에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수진 민주당 위원이 “지난해 기준 검찰이 직접수사한 6대범죄 1만건가량이 경찰에 이관되더라도 수사 역량에 문제없지 않느냐”는 취지로 질의하자, 진 차장은 “최선을 다해야 되겠습니다만 어려운 사건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사건의 내용을 봐야 될 것 같다”고 원론적인 수준에서 답변했다.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이 국내 치안·정보 업무를 쥐고 있는 경찰에 수사까지 몰아줘 ‘공룡 경찰’을 만든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경찰은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박형수 위원이 “커진 경찰권에 대해서 사법적 통제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묻자, 진 차장은 “통제의 수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박 위원이 재차 “수단을 물은 게 아니라 사법적 통제를 하는 게 맞느냐, 맞지 않느냐”고 하자, 진 차장은 “지금 있는 수단으로서 통제가 가능한 것인지 향후 사법적 통제를 더 가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같은 소위에서 검찰은 물론 법원행정처조차 “수사력이 경찰에 집중될 때 실질적으로 적절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될 수 있는지 충분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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