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통과로 검찰의 직접수사(수사개시) 범위가 6대범죄에서 부패·경제 등 2대범죄로 좁혀지게 되면서 그동안 검찰이 쌓아온 수사 역량이 사장되고 범죄 수사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 체계가 제대로 안착하기도 전에 이뤄진 변화라 수사 혼선과 국민들의 피해도 전망된다. 검찰과 경찰이 그간의 갈등을 털고 실질적인 조언·협력하는 관계를 설정해 진실 규명과 피해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일 전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보면, 검찰이 수사개시할 수 있던 6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 부패·경제를 제외한 사건이 4개월 뒤 경찰로 이관될 예정이다. 검찰은 법안 논의 초기부터 “적용하는 법리가 복잡해 수사-기소를 분리하면 부작용이 우려되고, 검찰의 수사역량이 사장된다”는 논리로 반대해왔다.
그러나 국외 사례를 보면 검찰과 경찰이 협력체계를 구축해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는 많다. 미국의 경우 통상적인 검사의 수사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련의 수사과정에 대한 법률적 조력 활동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검사가 수사를 개시하고 직접조사하는 수사관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기소를 책임지는 검사의 법률적 조력 활동이란, 영장・감청 등에 대한 요건 검토・조언, 기소 준비 과정에서 경찰이 수집한 증거의 증명력을 확인하는 것 등을 가리킨다. 수사-기소 분리 수준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영국에서도 국립기소청 소속 검사는 2000년대 초반까지 경찰서에 상주하며 법률조언 등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온라인으로 문서를 보면서 검사가 법률을 조언하고, 수사개시 시점부터 두 기관이 활발히 논의한다.
국내 형사소송법에도 검·경의 협력 의무는 규정돼있으나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협력 의무 규정은 지난 2020년 수사권 조정을 계기로 형사소송법에 담겼는데,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면서도 수사와 기소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그러나 현장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지난 1년간 대통령령으로 6개월마다 검·경이 개최해야 한다고 규정한 수사기관협의회조차 열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70여년간 검사의 수사지휘체계 하에 이뤄졌던 기관 간 소통이 사실상 단절된 것이다. 대신 검찰에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함흥차사다”라고, 경찰에선 “검사가 오타조차 꼬투리 잡아 영장을 반려한다”는 식의 불만이 외부로 표출됐다. 기관 간 기싸움과 사건처리 지연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연결됐다.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왼쪽부터), 강성국 법무부 차관, 진교훈 경찰청 차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출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과 경찰도 협력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난달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 참석한 진교훈 경찰청 차장은 “(법이 개정되면) 경찰도 사건을 수사할 때 검사와의 협의를 더 폭넓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할 일”이라고 말했다. 같은날 회의에 참석한 예세민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은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제도적 가능성을 박탈하면 안 된다”면서도 “(경찰 수사에 협력하고 조언하는 검찰의 역할은) 지금도 선거범죄 중 상당 부분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쪽이 최근 검경 수사 체계 재정립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법 개정 직전 윤 당선자는 국민의힘 의원 등과의 만남에서 법안에 원론적으로 반대하면서도,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수사를 중단할 수 없고 경찰들이 수사를 잘 해줄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윤 당선자 쪽 관계자도 지난 2일 “경찰 수사력을 끌어올리고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검찰이 어떻게 투입될 것인가도 충분히 (검토가) 가능하다”고 했다.
4일 경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이은애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총경)은 “프랑스와 독일은 검사가 경찰을 수사지휘를 한다고 하지만, 검사가 사무실에서 24시간 경찰 전화에 법리 상담을 한다”며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해야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게 아니라, 경찰에 조언·회의하면서 기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상의하는 방식”이라며 검·경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권 조정 이후 검경 기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서로 불신이 생긴 분위기가 없지 않다”며 “경찰에서 시급한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으로 일선 검사와 경찰이 허심탄회하게 사건을 논의·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병호 변호사(법무법인 현)도 “대검과 경찰청간 수사기관협의회가 실질화 돼야 하고, 관할 지검과 경찰서간 실무협의체도 별도로 구축해 수시로 논의하면서 두 기관이 반목이 아닌 협력·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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