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서울의 한 법정에서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년 ㄱ씨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클립아트코리아
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어쩌면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한겨레>가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검은 운동복 차림의 더벅머리 청년 ㄱ씨(23)가 서울의 한 법원 재판정 피고인석에 섰다. 청년의 혐의는 병역법 위반.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다 무단결근해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자신을 잘못을 인정하면서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처지를 이야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된 ㄱ씨는 지난 2~3월에 걸쳐 모두 8일 동안 근무지에 출근하지 않았다. 병역법은 ‘사회복무요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통틀어 8일 이상 복무를 이탈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가 살면서 지은 첫 번째 ‘범죄’였다.
ㄱ씨와 변호인은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다만 변호인은 “ㄱ씨가 오랫동안 앓아왔던 우울증이 갑자기 심화해 무기력증으로 출근하지 못했다”고 결근을 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우울증은 피고인들의 양형 참작 사유로 쓰이기도 한다. ㄱ씨의 경우는 딱한 가정사가 우울증의 원인이 된 경우로 보였다.
ㄱ씨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3명이다. 어머니는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지 오래 됐고, 아버지는 정신질환이 있다. ㄱ씨는 성장하는 동안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와 큰아버지 부부가 사실상 ㄱ씨를 돌봤고, 2017년부터는 ㄱ씨 어머니를 돕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사실상 부모 역할까지 겸했다. ㄱ씨가 형사재판을 준비하며 변호인을 만나는 일도 부모님이 아닌 활동지원사와 함께 할 정도였다.
ㄱ씨의 무기력과 우울의 뿌리가 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제대로 된 진단이나 치료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ㄱ씨 가족 수입은 어머니가 받는 장애수당 20만∼30만원 정도와 아버지가 간간이 건설현장에 나가서 받는 일당이 전부다. 한달 백만원 남짓한 돈으로 세 가족이 살아가고 있다. ㄱ씨는 이날 법정에서 판사가 연락처를 확인할 때도 “공소장에 적힌 전화번호가 맞지만, 요금을 내지 못해 지금은 정지 됐습니다. 지금은 연락처가 없는 상태입니다”라고 말했다.
ㄱ씨의 근무지 동료와 가족들 모두 그가 갑자기 결근하게 된 이유를 알지 못했다. ㄱ씨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ㄱ씨 어머니의 활동지원사는 “ㄱ씨가 원래도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았다. 밥도 방에서 혼자 먹고, 방 안에 빈 그릇 쌓아두고 치우지 않는 일도 많았다. 최근 들어 증세가 더 심해졌다.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아서 ㄱ씨가 친척들과 이야기해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 가족을 오랫동안 지켜본 활동지원사는 “성품이 참 좋은 가족들인데, 세상을 사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털어놨다.
ㄱ씨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이 사건 발생 전까지는 성실히 복무하다가 갑자기 건강이 악화해 이 사건에 이르렀다. 현재 무료 우울증 상담 방안을 알아보고 있고, ㄱ씨의 어머니를 위해 집으로 오는 활동지원사 역시 ㄱ씨가 성실히 복무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참작해 다시 한 번 열심히 살 수 있도록 관대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했다. ㄱ씨도 “저의 지난 실수를 깊게 반성하고 있다. 선처해 주신다면 열심히 복무하겠다”고 짧게 최후 진술을 마쳤다. 검찰은 ㄱ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ㄱ씨가 기소된 ‘사회복무요원의 복무이탈’ 혐의는 징역형만을 선고할 수 있게 된 조항이다. 선처를 받는다 하더라도 ㄱ씨에게는 최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ㄱ씨 선고공판은 오는 24일 오전에 열린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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