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9일 오후 열린 제35주기 이한열 추모식 참석자들이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87년 6월9일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지며 6월 민주항쟁 도화선이 된 고 이한열 열사의 제35주기 추모식이 9일 모교인 연세대 신촌캠퍼스 한열동산에서 열렸다. 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가 지난 1월 별세한 뒤 처음 열린 추모식이다.
이한열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 날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은 아들을 이어 민주투사로 살아온 배 여사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이인숙 연세민주동문회장은 “바로 오늘이 구수하다가도 대쪽같이 쩌렁쩌렁한 어머니 목소리가 이 동산을 채우는 날인데 기댈 곳 없이 먹먹한 마음에 시절의 불안감까지 겹쳐지는 이 6월이 너무 버겁다”며 “이한열 열사의 희생과 어머니의 헌신이 만든 역사가 훼손되지 않도록 깨어있는 힘으로 필요한 곳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유가족 대표로 참석한 이한열 열사의 누나 이숙례씨는 “작년 오늘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엄마의 빈자리에 제가 섰다. 여기 앉아계시던 엄마의 뒷모습은 축 처져 있는 어깨로, 그 힘듦의 무게를 가까스로 견뎌내고 계시는 것이 느껴져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5월부터 이맘때쯤이면 엄마는 매년 광주에 계시면서 한열이 후배 학생들과의 만남을 슬픔 속에서도 기쁨으로 맞이하는 일상을 보내셨다”며 “오늘은 하늘나라에서 그토록 보고 싶던 아들을 만나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배 여사가 염원해온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유공자법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민주화운동 참가자를 유공자로 인정하고 이들에 대해 교육·의료·취업 등의 지원을 하는 법이다. 배 여사는 지난해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가족들과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농성에 참여하고 1인 시위를 했다. 장남수 이사장은 “20년 넘었는데도 한열이와 종철이 등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들은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정치가가 된 분들은 우리 열사들에게 많은 빚을 졌는데 왜 20년이 넘도록 그 법을 만들지 못하냐”라고 했다. 이어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민주유공자법을 민주당 당론으로 만들어서 한열이에게 진 빚을 갚으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위원장을 비롯해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 김귀정 열사 어머니 김종분 여사, 강성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부이사장, 장현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의장, 유경선 연대 총동문회장이 참석했다. 이한열 열사 피격 당시 사진을 찍은 정태원 전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영화 <1987>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도 자리를 지켰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를 이한열 추모 주간으로 정하고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그림을 게시하는 등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저녁 7시 한열동산에서는 ‘추모의 밤’을 진행한다.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35주기 추모식에서 이한열 열사와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함께 찍힌 사진이 추모비 위에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