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낮 12시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안에 마련된 식사 대기 천막에서 노인 40여명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고병찬 기자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3일, 한낮 최고 기온 33도를 넘긴 정오께 노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 인근 천막엔 노인 40여명이 햇빛을 피해 천막 아래서 식사 순서를 기다리고, 일부는 천막 밖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천막 밖 노인들은 강렬히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자꾸만 그늘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노인들이 들어간 22명 규모의 식사공간은 후끈했다. 한 대뿐인 가정용 스탠딩 에어컨이 찬바람을 내뿜었지만, 폭염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고영배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 사무국장은 “노인분들이 오늘도 새벽 5시부터 나와 식사를 기다리셨다. 짜장, 흑미밥, 계란 반쪽, 김치콩나물국, 단팥빵, 요구르트 등으로 준비된 식사를 250인분 정도 준비했는데, 더위 탓인지 220분 정도 오셨다”며 “노인들이 대기하는 천막에 선풍기가 두 대밖에 없어 다음 주 중으로 종로구청에서 냉풍기를 설치해주기로 했다”고 했다.
3일 낮 12시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안에 마련된 식사 대기 천막에서 노인 40여명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고병찬 기자
“전기요금 걱정…다음달 전기료 고지서를 어째”
이날 서울 지역 곳곳에서 시민들은 불가마 같은 ‘찜통더위’에 신음했다. 쇼핑몰이나 영화관 등을 찾으며 더위를 피한 이들도 많았지만 무료급식소를 찾은 이들처럼 거리에서 폭염을 견디는 이들도 많았다.
올해는 더위가 이르게 찾아왔다. 지난 2일 정부는 폭염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는데, ‘경계’ 발령은 지난해(7월 20일)보다 18일 빨라졌다. 거리로 나온 이들은 계속 치솟는 물가와, 전기요금 인상 소식에 예년보다 빠르게 찾아온 폭염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시름에 잠겨 있었다.
3일 낮 12시39분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 앞에 노인들이 해를 피해 그늘에서 식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고병찬 기자
3일 낮 12시21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북편 담장 그늘에 모인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고병찬 기자
탑골공원 북편 담장에는 장기판이 놓인 탁상 25개가량에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마친 노인 들은 이곳에서 ‘벗’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며 장기를 두고 있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왔다는 장세율(92)씨는 “혼자서 노인연금과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가지고 살다 보니 집에 있어도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을 켤 수가 없다. 게다가 다음 달부턴 인상된 전기료로 고지서가 날아올 텐데 더 걱정이다”라며 “그래서 더울 땐 차라리 무료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와 친구들 만나 대화하고, 식사도 하다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낫다. 해가 지고 집에 가면 더위가 덜하지 않나”라고 했다.
닭꼬치 노점상, 불 앞에서 ‘손바닥 선풍기’ 하나로…
노점상들은 고물가, 경기침체에 폭염까지 덮치는 ‘삼중고’에 아예 장사를 중단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인근에서 10년째 닭꼬치를 판매하고 있는 노점상 이아무개(55)씨는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크기의 선풍기를 놓고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이씨는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일주일 쓸 수 있는 가스 한 통은 3만7000원에서 4만8000원으로 오르고, 소스값도 1만원 이상 올랐다. 어제(2일) 닭꼬치 70개를 팔았는데 원재룟값 9만5000원을 빼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다”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렸다지만, 이후에도 거리에 사람이 없어 장사가 잘 안됐었다. 더워지면서 집에 가면 겨드랑이부터 등까지 옷에 소금 꽃이 필 정도로 고생하는데, 사람들이 닭꼬치를 먹지 않아 장사는 더 안되니 차라리 한 달 동안 쉬는 게 낫겠다”고 토로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폭염특보가 발효된 3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를 찾은 시민들이 쇼핑몰을 이용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한편, 더위를 피해 도심의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 카페, 영화관, 야외수영장 등 실내로 몰려든 시민들도 많았다. 낮 12시께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식당가 앞에서는 줄을 서거나 대기공간에 앉아있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영화관 전광판에는 오후 2~3시에 시작하는 일부 영화들이 이미 매진됐다는 표시가 떴다. 이날 두 자녀와 쇼핑몰을 방문한 최아무개(33)씨는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싶어하는데 날씨가 더워 가까운 쇼핑몰로 왔다”고 말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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