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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직,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가난…기초생활보장 22년

등록 2022-08-29 05:00수정 2022-08-29 16:41

[수원 세모녀 비극 그 후] ‘사후약방문’ 써온 공공부조 22년

2004년 대구 아이 영양실조 사망
그제서야 ‘긴급복지지원제도’ 도입
2014년 ‘송파 세 모녀’ 세상 떠나
위기가구 발굴·부양의무자 완화
질병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발인이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질병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발인이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죽음 위에 죽음이 쌓였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있기 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스러졌다. 벼랑 끝 경계에서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수급자가 되어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성긴 사회복지망은, 어느 길로 가든 죽음에 다다르게 했다. 죽음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뒤늦은 대책을 내놓았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뒤 한국의 공공부조 22년은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에 빚진 역사인 셈이다.

20년 빈곤 사각지대 죽음과 대책.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죽음 위에 만들어진 제도들

2004년 12월, 대구 동구 불로동 한 단칸방 장롱 안에서 4살짜리 아이의 주검이 발견됐다. 영양실조로 인해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났고, 함께 발견된 여동생도 영양실조 상태였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됐지만 엄격한 소득·재산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혜자가 적었던 탓이었다. 이를 계기로 주 소득자의 사망 등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우면 우선 생계비를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가 도입됐다.

10년이 지난 2014년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사망했다. 단독주택 반지하에 세들어 살던 이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집세와 공과금 70만원, 그리고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등이 ‘송파 세 모녀 법’이라는 이름으로 잇따라 제·개정됐다.

정부의 대책은 위기가구 발굴 확대와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완화에 집중됐다. 2015년 단전, 단수, 보험료 체납 등 18종의 위기가구 관련 정보를 입수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정비했다. 입수 정보는 34종까지 늘었으며, 수원 세 모녀 죽음을 계기로 9월부터는 39종으로 확대한다.

발굴돼도 기초생활보장은 2.4%뿐

또 죽음이 쌓였다. 2018년 4월 충북 증평군에서 40대 여성이 세살 난 딸과 숨졌는데, 남편의 사망 이후 빚 독촉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해 5월 경북 구미시 한 원룸에서 20대 남성과 생후 16개월 추정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다. 두 가구 모두 복지급여를 신청한 기록은 없어 신청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됐다.

2019년 7월 서울 관악구에서 탈북 모자가 사망했다. 아동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세차례나 지역 주민센터를 방문했지만, 다른 복지제도는 안내받지 못했다. 이후 정부는 고위험 위기가구 실태조사를 정례화하고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을 활성화했다. 그러나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2020년 발달장애인 아들과 살던 60대 여성이 숨진 지 반년 만에 발견됐다(‘방배동 모자’ 사건). 주거급여 수급자였지만, 어려운 사정이 오래전 이혼한 배우자(부양의무자) 등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 생계·의료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복지 수급 가구를 정기 방문하는 ‘위기가구 방문 모니터링’ 점검망을 만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2001년 142만명, 인구 대비 3.2%였다가 2019년까지 2%대 후반~3%대 초반의 수급률을 유지해왔다. 2020년이 돼서야 수급률이 4.1%(213만4천명)로 늘었다. 2021년 수급률은 4.6%(236만명)이다. 중소도시 4인가구 기준으로 2001년 80만5000원이던 생계급여는 2013년 102만1126원으로 올랐다. 2021년을 기준으로는 146만2887원이 됐다.

수급자 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위기가구가 발굴되더라도 높은 문턱 탓에 극소수만 기초생활수급제도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사업을 시행해 고위험 대상자 458만3673명을 찾아냈지만, 지원은 188만863명(41%)에게만 돌아갔다. 물품 지원이나 민간서비스 연계 등이 대부분이었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4%(11만869명), 긴급복지지원제도는 1.2%(5만8787명)에 그쳤다.

‘낙인’ 강화해온 복지 대책사

때론 정부 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태롭게 했다. 2010년 사회복지통합전산망 을 도입한 뒤 정부는 수급자와 부양의무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고, 경남 남해와 충북 청주 등에서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노인들이 잇따라 숨졌다. 2014년 정부는 ‘부정수급 통합 콜센터’를 운영하며 “100일 만에 100억원대 부정수급을 적발했다”고 홍보했지만 대부분 병원장, 시설장 등 복지기관의 부정이었다. 그러나 ‘부정수급자’ ‘방만한 사용’ 등 부정적 인식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계속 따라붙었다.

생계급여의 근로능력 평가 강화도 수급자를 옥죄었다. 심장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치환하는 수술을 받은 뒤 2005년부터 근로능력이 없는 일반 수급 자격을 유지하던 최인기씨는 2013년 11월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았다. 2014년 8월, 급여 삭감을 우려해 청소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그는 이식 혈관 감염으로 숨졌다. 2012년 지자체에서 국민연금공단으로 평가 업무가 위탁된 뒤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기존 5%에서 2014년 14.2%까지 3배가량 늘어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의 공공부조에는 사람을 살리는 제도와 사람을 죽이는 제도가 공존하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죽음과 대책이 쌓여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34조 1항)가 실현될지, 수원 세 모녀는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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