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서울 역삼동에 입주해 있던 론스타.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투자자-국가 국제분쟁제도(ISDS) 사건에서 2900억원 가량 배상 판정을 받은 뒤 중재판정부의 절차 위반과 권한 초과를 따지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1일 알려졌다. 다만 취소 청구가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지 않아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국제분쟁해결센터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게 2억1650만달러(환율 1340원 기준 2901억원)를 배상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중재판정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인 ‘하나금융지주 매각 승인 지연 및 가격 인하로 인한 손해’ 관련 한국정부에게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는 등 매각 가격 인하에 책임이 있지만, 한국정부도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한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판정부는 이 사안 관련 한국 정부에게 론스타 청구 금액(4억3천만달러)의 절반인 2억1650만 달러를 론스타에게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중재판정부가 매각 승인 지연의 책임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절차 위반‧권한 초과 문제 등을 바탕으로 판정 취소 신청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국가 국제분쟁제도는 단심제이나, 센터 협약상 △판정부가 적절하게 구성되지 않은 경우 △판정부가 명백히 권한 초과한 경우 △절차규칙상 중대 일탈이 있는 경우 등 다섯 가지 사유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신청이 가능하다.
앞서 중재판정부는 론스타가 중재과정에서 제출한 2019년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서 판정내린 론스타-하나금융지주 사이의 손해배상 중재 결정문을 바탕으로 한국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문에는 한국 정부가 하나금융지주에게 계약금액을 낮춰야 매각 승인이 가능하다는 등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한국 정부는 론스타가 국제중재판소 결정문을 제출할 때부터, 이를 받아들일 경우 절차 위반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고 한다. 국제중재재판소 결정에 한국 정부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하나금융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관계에 대해서 정부가 입장을 내거나 다퉈본 사실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재판정부가 과거 결정문을 근거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권한 위반이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중재인 1명은 이런 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판정 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소수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가 취소신청에 나서더라도 판정이 뒤집힐지는 미지수다. 법무부가 제공한 통계를 보면, 1966년 국제분쟁해결센터가 설립된 이래 지난해까지 접수된 취소신청 133건 가운데 인용(전부 또는 일부 취소)이 된 경우는 20건(15%)에 불과하다. 국제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이미 판정부가 채택한 증거 등을 두고 명백한 권한 일탈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다. 다른 취소 사유에 대해서도 주장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취소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비용 부담도 늘어난다. 중재판정부는 정부에게 배상금에 대한 지연이자도 제출하라고 결정했는데, 법무부가 전날 기준 계산한 지연이자는 185억원 정도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론스타와의 분쟁으로 법률 자문 비용·심리기일 비용 등으로 쓴 금액만 478억원에 달한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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