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살해사건이 벌어진 서울 신당역에서 18일 오전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의 공간이 추모의 메시지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진은 여성화장실 표시와 메시지를 다중노출기법으로 찍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죽음뿐 아니라 피해자가 성폭력에 맞서 싸운 용기도 기억하자.”
지난 14일 저녁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기리는 추모 물결이 주말 내내 이어졌다.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과 여러 단체는 “이 사건은 성차별에 바탕을 둔 여성혐오 범죄”임을 강조하며 “정부는 ‘국가가 죽였다’는 외침에 책임 있게 답하라”고 요구했다.
18일 오후 2시께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 추모공간에는 시민들이 올려둔 국화가 이제는 더 놓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두 딸과 함께 온 조민욱(43)씨는 추모 문구를 적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조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를 찾았다. 이번 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살고자 호소를 했던 여성이 끝내 살해된 것”이라며 “나라에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온 황아무개(34)씨는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도 추모공간의 벽을 빼곡하게 채워갔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추모 메시지를 사진으로 찍거나, 글귀를 보면서 상념에 잠긴 듯 물끄러미 서 있기도 했다.
토요일인 17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에는 검은 옷을 입은 시민 100여명이 모여 추모제를 열었다. 불꽃페미액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진보당 인권위원회,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페미당당 등이 주최한 이 추모제에는 여성 청년 참가자가 가장 많았다. 더러 중년 남성과 외국인도 보였다. 그들은 국화 한 송이를 옆에 둔 채 각자 손팻말을 들었다. ‘과연 그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만나주지 않는다고 죽임을 당했을까?’ ‘강남역 사건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스톱 페미사이드(STOP FEMICIDE·여성 살해를 멈추라)’ 등 손팻말 속 글귀에는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분노가 담겼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6일 신당역 추모공간을 찾은 뒤 “(이 사건은) 여성혐오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강한 비판도 이어졌다. 혜원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수없이 많은 여성이 (이 사건과) 흡사한 범죄를 수십년간 겪었다는 사실이 명백한 여성 대상 범죄인 걸 보여준다. 그런데도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한다”며 “(피해자 대신) 여성 적대적 정부가 죽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용기를 기억하자는 제안도 이어졌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피해자는 용기 내 불법촬영과 스토킹을 고소하며 싸웠다”며 “무참하게 죽어간 것만을 기억하기보다, 피해자가 생전 성폭력에 맞서 싸운 용기도 기억하자”고 했다. 예원 페미당당 활동가는 “옆에 서서 같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제가 있는 자리만큼은 안전한 자리로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