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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슬기로운 기자생활] 한동훈 법무부의 ‘과거 타령’

등록 2022-09-22 19:05수정 2022-09-23 02:39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5일 저녁 역무원 살인 사건이 벌어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을 찾아 역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5일 저녁 역무원 살인 사건이 벌어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을 찾아 역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전광준 | 법조팀 기자

빠르긴 정말 빠르다. 스토킹처벌법에 대한 ‘한동훈 법무부’의 대응을 보고 든 생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출근길에 법무부에 제도 보완을 지시하자 세시간 뒤인 오전 11시30분께 법무부 대처 방안이 발표됐다. 윤 대통령 발언 직후 법무부 언론 담당자들조차 “오늘 대책이 나올지 확실하지 않다”며 말끝을 흐렸는데 말이다.

법무부는 이날 스토킹처벌법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과거 법무부’의 잘못이 지적됐다. 보도자료에는 과거 법무부가 이 조항 폐지에 사실상 반대했다는 내용이 당구장 표시(※)와 함께 강조돼 있었다. 실제 지난해 3월 ‘박범계 법무부’는 본인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막는 법인 만큼 피해자 뜻에 따라 처벌 여부를 정하는 반의사 불벌 조항을 두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과거 법무부’는 한동훈 법무부의 가장 큰 자산이다. 과거의 무능함을 배경으로 이번 법무부는 빛난다. 나라가 줬다 빼앗은 배상금의 이자폭탄에 고통받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의 호소에 지난 정권 법무부는 꿈쩍하지 않았지만, 한동훈 법무부는 과감하게 이자를 면제해줬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청구 대상 확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시행된 4·3특별법에도 불구하고 군법회의가 아닌 일반재판을 받은 이들은 재심 청구가 어려웠는데, 일거에 이 문제를 해결했다.

누구는 말한다. 전 정권 관계자는 그런 전향적인 조치를 했다가 검찰 공격을 받을 수 있지만 한 장관은 검찰 기소에서 자유로우니 가능한 일이라고. 박범계 전 장관 등이 전향적인 법 집행에 나섰다가 정권이 바뀐 뒤 검찰 수사를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을 법하긴 하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검찰이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에게 비슷한 논리로 배임 잣대를 들이댄 전례가 있으니 말이다.(법원에서는 무죄가 확정됐다.)

다만 훗날 검찰 공격이 우려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점을 국민이 굳이 이해해줘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빚고문’에 시달리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의 구체적 고통보다 정치인 자신의 안위나 부담이 더 중요하다는 고백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과거 법무부’가 소환되는 건 아니다. 한 장관 미국 출장 때, 현지 공휴일인 독립기념일을 포함해 일정을 짠 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법무부 쪽 견해를 묻자 ‘과거 사례도 살필 필요가 있겠다’고 했지만, 결국 ‘과거 법무부’ 언급은 없었다. 지난 1월 독일 출장 때 박범계 당시 장관은 토요일에 도착해 일주일 뒤 떠나는 식으로 휴일 일정을 최소화했다. 예상치 못한(?) 과거 법무부의 정상적인 모습이 지금 법무부의 과거 타령을 막은 셈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동훈 법무부가 과거 법무부의 무능함을 욕하면서라도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유나 배경이 어찌 됐건 국가기관이 더욱더 국민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법 집행에 나서는 건 국민에게 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출장 사례처럼 한동훈 법무부도 비판받을 거리가 많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에 대한 ‘이중 잣대’도 그 사례다. 법무부는 지난 6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때는 이 법안 탓에 ‘중요 범죄’를 수사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가, 두달 뒤에는 ‘중요 범죄’도 수사할 수 있도록 한 법이라 시행령 개정을 통한 수사권 확대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이런 ‘꼼수’는 보기에 따라 유능함일 수 있겠지만, ‘모순된 해석’이란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한동훈 법무부의 ‘과거 타령’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차기 유력 대선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기조는 계속될 것 같다. 이런 ‘전 장관 때리기’ 기조를 한 장관 이후 들어설 다음 장관도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 색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 ‘공정과 상식’이라는 윤석열 정부 원칙과도 꽤나 잘 맞아떨어지니 말이다. 과거 타령이 법무부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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