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경북 성주 사드기지로 향하는 길목에서 ‘소성리 할매’들이 사드 철거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자 경찰이 둘러싸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파출소 하나 없이 평화로웠던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위가 고요한 새벽, 어둠을 뚫고 할머니들이 마을회관 앞으로 모이신다. 지난밤 마을 길목을 지켰던 도금연, 백광순, 이옥남 할머니는 이미 자리를 잡고 계신다. 스무명이 채 되지 않는 할머니들 주변을 100여명의 경찰이 둘러싼다. ‘대화 경찰’이 적힌 조끼를 입은 한 경찰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고갯짓을 하자 나머지 경찰들이 할머니를 길 밖으로 옮긴다. 물차, 쓰레기차 등이 쉼 없이 빈 길을 지나 사드기지로 향한다.
길 밖으로 내쫓긴 할머니들 입에서는 ‘사드 한탄’이 이어진다. “주민들이 알지 못하는 주민 대표는 누구냐?” “어제 온 총 든 군인들이 또 오면 어쩌냐?” “다음주에 국방부가 진짜 오긴 오냐?”
새벽 평화행동을 마친 도금연 할머니가 집 옆 텃밭에서 지난 주 심은 배추와 무의 잎을 고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도금연 할머니는 “사드에 쫓겨 새벽 4시면 눈이 떠지는 사드병이 걸렸어”라고 답한다. ‘소성리 할매들의 큰형님’인 도 할머니는 사드 부지가 된 골프장 앞에서 식당을 해 자식 다 키워 보내고 평안한 말년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드가 다 망쳐버렸다. 사드기지를 둘러싸고, 마을 사람들은 갈라섰고, 경찰과 군인이 갈라선 틈으로 들이닥쳤다. 사드에 맞서 도금연 할머니는 새벽부터 밤까지 마을 길목을 지키고 있다.
도금연 할머니(맨 왼쪽)를 비롯한 소성리 할매들이 경북 성주군청에서 사드기지 일반환경영향평가 주민대표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정부는 9월8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가 사드 부지 공여 문서에 서명하면서 공여 절차를 마쳤다고 밝혔다. 내년 3월 환경영향평가 종료를 목표로 남은 절차인 환경영향평가 보고서 작성과 여론 수렴을 진행할 방침이다. 환경영향평가를 마치면 미군은 2차 공여 부지에서 건설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성주군청에서 농성을 마친 소성리 할매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밤 10시까지 마을 길목을 지키고 있다. 할매들의 하루는 마을 길목에서 시작해 늦은 밤 끝났다. 5년째 반복되고 있다. 백소아 기자
“동네 여 조용하고, 참 공기 좋고 좋은데 마 이제 베맀다. 저리 있으면 동네 오염도 되고 미군 놈이 들락날락 드라싸면 좋겠나. 요즘은 아들도 안 올라 한다. 미군 놈 여 와 설치면 오겠나. 안 오지. 전부 와 설치면 위험하다는 건 알잖아. 총 가지고 지랄해쌓는 거 봐라.”
치열했던 삶의 끄트머리에서 편안히 쉬고 싶었던 도금연 할머니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소성리 할매들의 ‘사드병’은 나을 수 있을까.
소성리 할매들이 평화행동을 마친 뒤 취재를 위해 사진을 찍다 경찰차가 지나가자 일제히 시선이 움직인다. 백소아 기자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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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3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