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 피해를 입은 조국 전 장관에게 국가가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단독 김진영 부장판사는 17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 사찰로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2억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조 전 장관에게 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의 행위는 법이 정한 정치관여금지 위반행위로써 원고에 대한 비밀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정치 관여가 엄격하게 금지된 국정원 소속 공무원이 밀행성이라는 국정원의 특성을 이용해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 행위”라면서 “통상적 공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와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고 거액의 위자료를 인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 5월 국가정보원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2011년부터 이뤄진 민간인 사찰 관련 자료를 부분적으로 확인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를 대표해 소송에 임한 법무부 장관은 사찰 행위 자체는 인정했지만, 국정원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5년, 피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행위는 오랜 기간 걸쳐 이뤄진 행위이긴 하지만 국정원장 지시에 따라 원고를 비난할 목적을 갖고 일련의 계획에 따라 이뤄진 행위로 하나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최종적 불법행위는 2016년 7월18일 이뤄졌고 이 사건 소는 그 때로부터 5년 이내에 이뤄져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조 전 장관의 대리인단은 “일부 공개된 사실만으로도 법원은 조 전 장관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행위 사실과 조 전 장관의 피해사실을 명백히 인정했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보기관의 인권침해에 대해 어떠한 관용도 용납될 수 없다는 원칙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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