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하듯 수사기관 선택” “의원님은 뭘 걸겠나” 연일 화제 한동훈 장관 ‘어록’ 논리학으로 짚으니 사실 호도·비논리에 ‘약자 위한 언어’ 오남용도
[논썰] 곳곳에 논리 오류…한동훈을 위한 논술첨삭. 한겨레TV
안녕하십니까. <논썰>의 박용현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이른바 ‘어록’이 연일 화제입니다. 일반적인 검사나 장관의 화법과 달리 날을 세워 던지는 말들이 윤석열 정부 지지층에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듯합니다. ‘한동훈 스피치’라는 책도 나온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장관의 말 중에는 사실을 호도하거나 논리적으로 오류에 빠진 궤변이 많이 발견됩니다.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한 장관의 발언들을 사례로 삼아 논리학의 상식들을 한번 되새겨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허수아비 때리기
“수사받는 당사자가 마치 쇼핑하듯이 수사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적어도 민주법치 국가 중에는 없다.”
한 장관이 지난 24일 국정감사에 출석하며 기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특검 제안을 비판한 것이죠. 그런데 한 장관은 자신이 <채널에이(A)> 사건으로 수사 대상이었던 2020년 7월에는 이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검찰의 조사 요구에 불응하던 한 장관은 변호인 입장문을 통해 “서울중앙지검 핵심 간부가 한동훈 검사장을 허위로 음해하는 KBS 보도에 직접 관여했고 수사팀의 수사자료를 본 것으로 내외에서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수사팀이 허위 음해 공작에 관련돼 있다면 그 수사팀으로부터 수사를 받을 수 없다는 건 상식적인 요구”라고 주장했습니다. 수사팀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해당 수사팀의 수사를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인데, 이재명 대표의 특검 요구와 뭐가 다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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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장관은 민주당이 당사 압수수색을 막자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힘으로 막는 건 범죄의 영역”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채널에이(A)> 사건으로 검찰이 채널에이(A) 본사를 압수수색하려다 기자들의 물리적 저지로 실패했을 때도 한 장관은 같은 생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집행하는 데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언론사나 정당 당사와 같은 ‘정치적 자유’의 상징적 공간에 대해선 영장 발부나 집행이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장관의 ‘수사기관 쇼핑’ 발언으로 돌아가보면, 내로남불의 태도도 문제지만 발언 내용도 문제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함정들이 숨어있습니다.
민주당의 특검 요구는 현재 야권을 겨냥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합니다. 이것은 민주당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쿠키뉴스> 의뢰로 데이터리서치가 조사해 26일 보도된 여론조사를 보면, ‘대장동 특검’ 도입에 찬성하는 응답이 61.0%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는 34.4%에 그쳤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탄압이라는 의견도 52,7%로 과반에 이르렀습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8.6%였습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이런 점은 외면한 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 검찰 수사를 회피하려 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전제부터 잘못된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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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하듯이’라는 표현도 고약합니다. 특검은 국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의 동의도 거쳐야 합니다. 국가의 공식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인데, 마치 이 대표가 마음대로 특검을 임명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표현입니다.
특검 제도는 민주·법치주의 국가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민주국가에서도 검찰 등 수사기관이 불공정하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를 할 가능성은 늘 존재합니다. 그럴 때 중립적인 수사기관으로 특검을 세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가 내리는 것도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한 장관은 국회의 일원인 야당이 수사 대상자라는 점을 들어 국회의 특검법 입법 자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대로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아무리 정치탄압이고 편파수사여도 특검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나라야말로 민주법치국가가 아닌 ‘검찰국가’일 것입니다.
요약하면, 한 장관은 특검을 요구하는 근거와 특검 제도의 본질을 가리거나 비틀어 놓은 뒤 엉뚱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한 뒤 공격하는 수법이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입니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대표적 오류의 하나입니다. 이를테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도로 건설을 제한하자는 주장에 대해 “도로를 아예 놓지 않으면 어떻게 돌아다니라는 말이냐”고 반박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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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한 장관은 ‘검수완박’, 즉 검찰 수사권 축소를 비판하면서 “할 일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오직 범죄자뿐”이라는 말도 한 바 있습니다. 이 역시 그 자체로는 옳은 말이지만, 맥락상 왜곡이 숨어있습니다. 검찰 수사권 축소 등 검찰개혁 요구는 검찰이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수사하지 않는 폐해가 축적되면서 나온 것인데, 여기에는 눈 감은 채 ‘검찰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멋대로 전제한 뒤 저런 주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허수아비 때리기’의 또다른 사례입니다.
훈제 청어 또는 열반의 오류
“‘검수완박’의 논거 중 하나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건데 왜 매번 민주당은 수사와 기소가 결합돼 있는 특검을 찾는지 모르겠다.”
한 장관이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참석하러 국회에 나오면서 기자들과 만나 한 이야기입니다. 이 역시 그럴 듯하지요. 민주당이 수사-기소 분리를 지향해온 것도 맞고, 특검은 수사-기소가 분리되지 않는 형태인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또 함정이 있습니다.
우선, 야권에 대한 검찰의 몰아치기 수사와 특검 도입을 둘러싼 지금의 논쟁에서 쟁점은 ‘수사-기소 분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당장의 논점과 무관하거나 거리가 먼 문제를 끌어들여 상대방을 공격하고 논쟁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수법을 ‘훈제 청어’(Red Herring)의 오류라고 부릅니다. 훈제 청어는 냄새가 아주 강한데, 사냥개를 훈련할 때 이 훈제 청어를 사용해 사냥감의 냄새와 혼동하게 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원에 대해선 여러 다른 설명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짚을 점은, 현재 문제되는 수사를 특검에 맡기지 않고 검찰이 계속 하더라도 수사-기소 분리는 어차피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검찰이 하든, 특검이 하든 수사-기소 분리가 안되기는 매한가지인 것입니다.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쪽은 수사-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요구해왔지만 검찰은 계속 반대해왔습니다. 이렇게 수사-기소 분리가 제도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현 상황에서 이 문제를 들어 특검에 시비를 거는 것은 뭔가 맞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제시된 해법이 이와 연관된 문제들까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수법입니다. 이를테면, 음주운전을 금지하자는 주장에 대해 “그래봤자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는 것을 다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박하는 식입니다. 이런 비합리적인 논증을 ‘열반의 오류’(Nirvana Fallacy)라고 합니다.
“김건희 여사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지휘를 하라는 것은 너무 정파적인 접근 같다. 그렇게 따지면 이재명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수사)지휘해도 되겠나.”
한 장관은 김건희 여사 사건과 이재명 대표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동일선상에 놓고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했습니다. 하지만 두 수사지휘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이재명 대표 사건 수사에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은 장관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는 것으로 검찰의 독립성에 제약을 가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는 과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가했던 제약, 즉 윤석열 검찰총장이 부인과 관련된 이 사건을 지휘하지 못하도록 한 제약을 다시 풀어주는 내용인 것입니다. 오히려 검찰의 독립성을 회복시켜주는 셈입니다.
이렇게 내용상 정반대 성격의 ‘수사지휘’를 이름이 같다는 표면상 이유로 싸잡아서 동일시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의 하나인 ‘잘못된 유비’(False Analogy)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사과는 과일이고 둥급니다. 바나나도 과일입니다. 그러므로 바나나도 둥급니다. 말이 안되는 논리죠.
한 장관이 최근 대장동 특검에 대해 한 발언도 이와 유사한 논리적 오류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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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가 미진할 경우에 특검이 도입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사 성과가 날 경우에 특검을 도입해서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혹시 보셨느냐.”
특검을 요구하는 것은 앞서 말씀 드렸듯이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에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드는 경우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검찰이 수사해야 할 것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때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편향되고 무리하게 수사할 때입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봐주기 수사도 많지만, 검찰이 강하게 밀어붙여 ‘성과’를 내고 기소한 사건 중에 무죄가 나는 경우도 상당수 있습니다. 두 가지 수사의 양상은 다르지만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수사라는 본질은 같습니다. 상설특검법이 규정하는 특검 도입의 요건도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할 때로 돼있습니다. 수사가 미진할 경우에만 특검을 도입할 수 있다는 요건은 없습니다. 한 장관의 주장은 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장관은 특검을 요구하는 두 가지 상황을 구별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비유하면 이런 식입니다. 사과는 과일이고 둥급니다. 바나나도 과일이 되려면 둥글어야 합니다.
논리적인 차원을 떠나, 현실적으로도 한 장관의 말은 맞지 않습니다. 대장동 관련 검찰 수사는 사실 미진한 게 많습니다.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에는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지만, 이른바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을 기소한 뒤로는 아무런 진척이 없습니다. 검찰 출신인 박영수 전 특검 등 ‘50억 클럽’ 일원으로 알려진 이들에 대해선 검찰이 손을 놓고 있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점만 갖고도 특검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는 매우 미진한 상태인데, 한 장관은 이 사건의 경우 특검이 필요하다고 보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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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율
한 장관이 드러내는 논리적 문제점을 살펴볼 때 꼭 짚어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검찰 수사권 축소를 둘러싼 논란 속에 법무부가 내놓은 모순된 주장입니다.
“(검사의 수사개시) 영역을 2대 범죄로 더욱 제한하는 취지의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예시로 규정된 부패범죄, 경제범죄 외에, ‘중요 범죄’가 수사개시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 법문언상 명백하다.”
전자는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검수완박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낸 입장이고, 후자는 법무부가 이 법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을 통해 수사 범위를 늘리면서 밝힌 입장입니다. 해당 법이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2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로 ‘제한했다’와 ‘하지 않았다’는 상반된 주장을 법무부가 한 입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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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법에 대한 (다른) 해석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고 비판했는데, 이런 전문 용어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뭔가 잘못됐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확립한 고전 논리의 3대 기본원칙 중 하나인 ‘모순율’(Law of Contradiction)입니다. 이를 어기는 주장을 접하면 딱히 반박할 방법도 찾기 힘듭니다. 그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거짓 딜레마
최근 국정감사에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아직 사실관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만큼 이 의혹 자체에 대해서는 따로 논평할 기회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 장관의 대응 태도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한 장관은 김 의원의 질의에 반박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저 술 못 마시는 건 아십니까? 제가 저기 가서 술을 먹었다는 얘기입니까?”
한 장관이 술을 잘 마시는지 못 마시는지가 국정감사장에서 거론해야 할 사안인지도 의문이지만, 이 말은 논리적으로도 의혹에 대한 반박이 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술자리에 함께 가는 경우는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과 술자리에 간다는 것은 서로 ‘모순’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앞서 모순율을 살펴봤듯이 ‘A 아니면 B’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배타적 관계가 ‘모순’입니다. 이런 관계가 아닌데도 ‘A가 아니므로 B’라고 말하는 것을 ‘거짓 딜레마’(False Dilemma)라고 합니다. 제가 상식적인 말을 복잡하게 설명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발언은 부차적일 수 있습니다. 큰 화제가 된 것은 이어서 나온 발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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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저는 다 걸게요. 의원님은 뭐 거시겠어요? 법무부 장관직 포함해서 앞으로 어떤 공직이라든가 다 걸겠습니다. 의원님은 뭘 걸겠습니까?”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날짜와 시간을 다 특정해서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한 가장 논리적이고 간단한 반박은 그 날짜,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흥분해서 무엇을 걸겠다느니 걸라느니 하는, 도박 영화에 나오는 대사같은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억울함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의 품위에는 맞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보다는 차분하고 논리적인 반박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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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언어’ 오남용
“최강욱 의원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건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
“혐오와 풍자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전자는 <채널에이(A)> 사건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자신에게 질의를 하는 게 부당하다며 한 장관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신이 그 사건의 피해자라는 이유에서입니다.(최 의원은 최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후자는 풍자만화 <윤석열차>에 대한 한 장관의 언급입니다. 한 장관은 ‘2차 가해’ ‘혐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언어를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이라는 사회적 최강자를 옹호하는 데 동원하고 있습니다.
검사장이나 법무부 장관 같은 고위 공직자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해서 스스로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입니다.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 과정에서 명예훼손 논란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이는 민주사회에서 고위 공직자가 감수하며 대처해야 할 몫입니다. 더구나 사회구조적 차별 속에 이뤄지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2차 가해’ 개념을 권력자가 끌어다 쓰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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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생이 그린 카툰 <윤석열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엔의 정의를 보면, ‘혐오 표현’은 특정 인종·종교·성 등의 정체성에 기반해 개인이나 집단을 공격하거나 경멸·차별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이는 개인이나 사적인 집단을 대상으로 할 때 문제 되는 것이지, 국가권력이나 공직자를 향한 비판에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윤석열차>에 혐오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맥락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두 사례 모두 약자의 방패를 빼앗아 강자의 갑옷에 덧대는 꼴입니다.
이런 일도 있습니다. 한 장관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보도한 <시민언론 더 탐사> 관련자를 얼마전 고소했습니다. 자신의 차량을 미행하는 등 스토킹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더 탐사> 쪽은 입장문에서 “취재기자가 업무상 취재 목적으로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공직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기본 취재 과정”이라고 반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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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의 정의를 보면, 스토킹은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등의 행위로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언론의 취재 행위를 여기서 말하는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고 한다면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것입니다. 취재원에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며 이뤄지는 수많은 취재 행위가 스토킹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또 한 장관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느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고위 공직자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와 비판의 대상입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개인의 공간을 침범당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노출되는 거리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게 불안하고 두려울 이유가 있을까요. 언론이 공개된 장소에서 공직자의 동선을 확인할 자유조차 없다면 언론의 자유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한 장관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을 ‘언론 취재 봉쇄법’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약자의 언어를 오남용한 데 이어 약자의 법까지 오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쁜 논증의 해악
한 장관은 법률가이자 법무부 장관입니다. 논리적이고 품격있는 말을 써야 하는 위치입니다. 그러나 한 장관은 거친 발언으로 정치 공방의 전면에 나선 느낌입니다.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듯한 표현들 속에 비논리와 궤변도 종종 섞여듭니다. 교묘하게 말을 잘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건강한 사회적 토론을 위해선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이번 <논썰>은 <일상의 무기가 되는 논리수업>(마이클 위디 지음, 반니 펴냄)이라는 책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책 저자의 머리말 한 대목을 소개해드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나쁜 논증은 그야말로 너무 많고, 그 효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개인 및 집단 차원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해롭고 거짓된 견해를 믿게 하고 끔찍한 결정을 영구히 유지하게 한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