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학교 밖 청소년은 15만명 정도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은 ‘3개월 이상 결석하거나 취학의무를 유예한 청소년’ ‘제적·퇴학 처분을 받거나 자퇴한 청소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청소년’을 학교 밖 청소년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다시 학업형, 직업형, 무업형, 비행형, 은둔형이라는 칸막이 항목으로 나뉘어 통계로만 존재한다. ‘학교 안 청소년’들이 11월17일 수학능력시험을 향해 달려갈 때, 뒤늦게 학업형으로 돌아선 학교 밖 청소년들은 고졸 검정고시 합격 문턱을 먼저 넘어야 한다.
“도대체 몇 시간을 공부하는 거예요. 피 터져 XX라는 건가. 나 안 해!”
고졸 검정고시를 2주 앞둔 7월 말, 정현(21·학생은 모두 가명)씨가 장보성(56) 선생님에게 버럭 소리 치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갖은 욕설로 시끌시끌했던 교실이 삽시간에 침묵에 빠졌다. 평소에도 욱하는 일이 잦은 정현씨가 이렇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은 그래도 드문 일이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보다 진도가 느린 정현씨를 위해 욕심을 낸 게 탈이었다. 평소와 달리 3시간 넘도록 수업이 끝나지 않자 정현씨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교실에 있던 학생들과 선생님 누구도 180㎝ 넘는 키의 거구인 정현씨가 씩씩대며 등 돌려 문을 박차고 나가는 걸 말리긴 어려웠다. 박정하(38) 선생님은 내일이면 아무 일 없이 돌아올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바라봤다.
기자는 5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서울 은평구 대조동 ‘청소년도서관 작공’(작공)에서 정현씨 등 6명의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교사’가 됐다. 학교 밖 청소년에서 어느덧 스무살 안팎 성인이 된 ‘거친’ 학생들이 모인 이곳에선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고등학생 때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던 이들은 다시 연필을 잡는 것도, 수업시간을 맞추는 것도, 담피(흡연 은어)를 참는 것도 어려워했다.
“아이들을 처음 보면 당황하실 수도 있는데… 일단 와보세요.”
검정고시 준비 자원봉사를 할 수 있냐고 묻는 사회부 기자의 전화에 박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비행·은둔형에서 학업·직업형으로 돌아가려 고군분투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대학생 시절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업형 학교 밖 청소년을 직접 가르쳐 본 경험도 있었다. 청소년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말라는 말은 생각도 못 했다.
“청소년 도서관이라고 해서 말 잘 듣고 착한 학생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오시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많아요. 그런데 성인 같은 큰 덩치에 문신까지 한 학생들이 있으니 당황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당황의 의미를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5월12일 오후 3시 처음 찾아간 작공엔 왼팔에 용 문신을 한 승수(19)씨, 꽃무늬 문신의 유경(19)씨, 이들과 동갑내기인 수진·은성씨가 모여 있었다. 이들은 사흘 뒤부터 3박4일간 함께 갈 제주도 여행 계획과 여행 규칙을 짜느라 분주했다.
‘팀플’을 하는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아직은 앳된 얼굴의 학생들 입에선 욕설이 끊이질 않았다. 서로에게 속사포처럼 욕을 뱉어내는 통에 싸우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1시간가량 논의를 끝내고 학생들이 담배를 피러 나가기 전까지 긴장은 계속됐다.
당황하는 기자 옆에 앉은 장 선생님은 작공이란 공간에 대해 설명했다. 2009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 주민센터 앞 ‘작은 공원’에서 갖은 말썽을 부리고, 노숙하던 ‘양아치’ 중학생 아이들에게 상담과 식사를 제공하면서 ‘작공 1기’가 시작됐다고 했다.
부모가 있으나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을 지역공동체가 함께 키워나가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던 ‘엄마’ 10명이 주축이었다. 2011년부턴 서울시 학교 밖 청소년 징검다리 거점 공간으로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장 선생님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처럼 구구단은 잘 몰라도 소년법 1호부터 10호까지 외우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동보육시설에서 성장했던 보호종료아동, 학교 부적응 청소년 등 위기 청소년들이 작공의 학생들”이라고 했다.
이날 만난 수진·유경씨도 학교 밖을 떠돌다 작공을 찾아오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집에 보호자가 있었지만 학교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제 맘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학교에서도 어울릴 사람이 없어 길거리로 나갔는데 담배도 피우고, 그런 애들이 유일하게 내 맘을 알아주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했어요.”(수진)
폭력이 일상인 학교 밖에서 수진씨는 2019년 폭력 등으로 소년보호처분 8호를 받고 소년원에 1개월간 있었다. 유경씨도 음주와 흡연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 주민등록증을 도용했다가 소년보호처분 6호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작공을 찾는 학생 대부분이 소년원 등에 갔다 왔거나 보호처분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장 선생님은 기자에게 검정고시 준비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을 위한 ‘인문학 토론’ 수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학교를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방금까지 욕하며 소리 지르던 모습을 봤던 터라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이런 토론을 좋아하고 잘합니다.” 장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반은 진실, 반은 거짓이었다. 욕설 아니면 주먹으로 소통하던 아이들은 자신의 말을 관철하기 위해 자꾸만 목소리를 높였다. 5월27일 토론 수업이 진행됐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주제를 두고 승수씨와 수진씨는 서로 정반대 의견을 내며 세게 붙었다.
누군가 소수라는 이유로 희생당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수진씨 말에 승수씨는 “저는 절대 소수에 위치하지 않을 거고, 소수에 있는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다수를 위해서 희생당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라고 반박했다.
둘의 ‘토론’에는 욕설이 섞였고, 얼굴을 붉히다 싸움으로 번졌다. “아니, 쌤 솔직히 제 말이 맞지 않아요?” 두 사람은 기자를 바라봤다. 도와준 건 이들의 선배 혁수(23)씨였다. 혁수씨는 철거용역으로 일하며 재개발 지역에서 노인들을 끌어냈던 경험을 말했다.
“아파트를 크게 지어 많은 사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면 다수는 행복하겠지만, 그렇다고 소수를 희생시키는 게 마냥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주장만 할 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할 지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2020년 작공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했던 혁수씨는 지난해 경기도 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용역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혁수씨처럼 검정고시에 합격해 작공을 ‘졸업’하고도 찾아와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하거나 물질적 도움을 주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장 선생님은 “지금도 필요할 때 졸업생들을 불러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과 관계를 맺게 하고 있다. 선배들이 자신의 삶을 얘기하면 아이들은 충고하지 않아도 스스로 위로를 느낀다”고 했다.
기자가 자신 있던 국어·영어 과목은 지난 2월부터 봉사활동을 해 온 대학생 선생님에게 배정돼 있었다. 뒤늦게 합류한 기자에겐 한국사 과목이 맡겨졌다.
첫 수업을 앞두고 검정고시용 한국사 참고서를 급하게 폈다. 하필이면 이날 써야 하는 기사가 두 개나 됐다. 예습할 시간이 없었던 ‘불량 교사’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겨우 고등학교 시절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참고서를 보며 신석기 혁명과 고대국가의 지배체제를 그럭저럭 넘어갔다.
6월10일, 검정고시계의 ‘전한길’(공무원 한국사 과목 대표강사)이 되겠다는 목표로 석진(20), 시원(21), 수진, 유경씨와 다시 마주했다. 말해줄 건 산더미였는데 학생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큰 소리로 욕을 내뱉던 학생들은 수업시간이 되자 입을 다물고, 고개는 점차 책상을 향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친구와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수업시간 2시간 동안 채워야 할 진도의 절반도 마치지 못하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오랜 시간 공부를 놓았던 학생들이 다시 연필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 주에 본 쪽지시험에서 학생들은 절반도 맞히지 못했다.
이날 수업에서 그나마 기자의 질문에 답했던 건 석진씨였다. “중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다”는 석진씨는 지난해 8월 검정고시를 치렀지만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 대학을 목표로 올해 다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란 석진씨는 자의로 학교 밖으로 나온 건 아니라고 했다. 손재주가 좋아 요리를 배우고 싶었는데 시설에선 “돈이 많이 든다”며 공업고등학교에 원서를 넣게 했다고 했다. “공고도 버티면서 다녀보려고 했는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란 생각만 가득했어요. 그러다 2학년 때 자퇴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야 이 XX들아, 선생님들 기다리시는 거 안 보여?”
7월1일. 수업이 시작하는 오후 3시보다 늦게 도착한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겠다며 계속 수업을 지연시키자 참다 못한 장 선생님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날 수업에 나온 시원·유경·수진·정현·석진씨는 눈치를 보다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지각이 익숙했다.
그동안 기자가 맡았던 6차례 수업에서 대부분 1시간 정도 지각은 기본이었다. 박 선생님은 “아이들이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는 생활 습관에 익숙하다 보니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한다”며 이해를 구했다.
매번 늦으면서도 학생들은 나름 애쓰고 있었다. ‘거리’로 향하면서 완전히 뒤바뀐 생활 패턴을 한순간에 바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각은 해도 결석을 하진 않았다. “변하는 게 참 쉽지 않더라고요. 아침마다 눈은 안 떠지고, 나가려고 준비는 해야 하는데 발은 안 떨어지고,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도 작공 선생님들과 약속을 했고, 저 스스로 변해보자고 시작한 거잖아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석진씨가 한참 뒤에 털어놓은 말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검정고시에 도전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석진씨와 같은 양육시설에서 자란 정현씨는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 검정고시에 도전한다고 했다. 2020년 보호종료아동이 되며 시설에서 나온 정현씨는 당장 돈이 급했다. 그리고, 고졸이 아니라는 이유로 알바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 절망했다.
어쩔 수 없이 친구들을 따라 들어간 불법 스포츠토토 조직에서 큰 수익을 올리는 ‘팀장’이 됐지만, 항상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고 했다. “불법 도박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사귄 여자친구가 불법적인 일을 안 하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말해줬어요. 그때부터 제가 하는 일이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정직한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는데, 고졸이 아니면 알바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검정고시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중하지 못해도, 수업에 늦어도 작공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진심을 믿고 기다렸다. 장 선생님은 “학교형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시간표에 아이들을 껴맞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거칠고 문제가 많아 보여도 아이일 뿐이기에 색안경을 벗고 바라보면 아이들은 어른의 마음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3년 작공을 통해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한 58명의 학생 중 36명이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엔 ‘기다림’이 있었다.
8월11일, 2022년도 2회차 고졸 검정고시가 치러졌다
기자가 한국사 과목을 가르쳤던 6명 중 대학을 목표로 했던 5명은 원하는 학과를 갈 수 있는 성적을, 고졸이 목표였던 정현씨는 전과목 평균 60.45점으로 합격 커트라인 60점을 넘겼다. “나 혹시 영재인가?” 여러 과목에서 100점 가까운 성적을 받은 수진씨가 환하게 웃었다.
“선생님이 가르친 한국사만 76점을 맞았어요. 죄송해요.” 수진씨 시험지를 보니 검정고시가 코앞이던 7월29일 수진씨에게만 따로 가르쳤던 ‘대한민국 발전’ 부분 문제에 빗금이 그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학생보단 가르친 선생의 문제가 더 커 보였다.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방황의 시간이 길었던 은성씨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벗어나려 했던 친구들 속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또래집단에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버는 일이 많다 보니 아이들을 유혹하는 손길이 많아요. 작공 아이들도 저한테 ‘선생님 나 이런 거 한번만 해보면 안 될까’ 전화할 때가 많죠. 마약, 전세사기, 보험사기 등에 빠지는 친구들을 종종 봅니다.” 박 선생님이 덤덤하게 말했다.
고졸 검정고시라는 성취를 이룬 학생들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고졸을 했으니 알바를 하면서 헬스트레이너에 도전할까 해요”(정현) “원하는 학과에 지원할 거예요”(석진·시원) “하고 싶었던 간호조무사, 조향사 등 자격증을 딸 거예요”(유경) “대학에 가서 해외 봉사활동을 가보고 싶어요”(수진).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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