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돌려막기’로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로 기소된 문은상 신라젠 전 대표가 파기환송심에서도 원심과 같이 징역 5년과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원범)는 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문 전 대표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의 환송 판결에 따라 문 전 대표의 배임 규모를 350억원으로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신라젠의) 실질적 피해액은 2심 판단이 맞는다고 봐, 2심과 같은 벌금형을 병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은 다른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유입시킨 결과 신라젠 주가상승에 따른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됐고, 죄책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궁극적으로 투자자 손해는 펙사벡의 임상시험 실패로 인한 것”이라면서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문 전 대표 등은 2014년 3월부터 자기자본 없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350억원을 빌려 신라젠 신주인수권부사채(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매입할 권리를 가진 채권)를 인수했다. 그다음 신라젠 돈으로 페이퍼컴퍼니에 350억원을 갚고 2015년 12월 인수했던 채권을 행사해 신라젠 주식 1000만주를 매입, 대주주가 됐다.
채권 발행 시점과 행사 시점 사이에는 신라젠이 개발 중이던 항암제 ‘펙사벡’의 임상 3상 시험 허가 등의 호재로 막대한 시세차익이 발생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표 등이 1918억원의 부당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하고 기소했다.
1·2심 재판부는 문 전 대표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보고 징역 5년 형을 선고했지만 배임 규모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1심은 배임액을 신주인수권부사채 납입 금액인 350억원으로 보고, 문 전 대표에게 벌금 350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2심은 신라젠이 받지 못한 인수대금의 운용 이익만 배임액으로 인정해 벌금 액수를 10억원으로 줄였다. 올해 6월 대법원은 실제로 인수 대금이 납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행 규모 전체인 350억원이 배임액이라고 판단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9년 8월 신라젠이 개발 중이던 펙사벡의 임상 중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신라젠은 개인의 투자가 많았던 터라 개인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신라젠의 급격한 성장배경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여권 인사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이동재 전 채널에이 기자의 ‘강요 미수’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 전 기자는 여권 인사의 비리를 제보하라며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협박하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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