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5일 저녁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서울 용산구 지하철 녹사평역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성탄절을 맞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미사가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대의 편지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공동기획으로 희생자 가족, 생존자, 목격자와 구조자들이 함께 10월29일과 그 후 이야기 나누는 자리도 마련합니다. 재난을 먼저 겪은 이들과 인권·재난전문가들이 곁이 되겠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줄 생존자, 구조자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채널(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위원회), 전자우편(1029dignity@gmail.com), 유선전화(02-723-5300)
12월25일 성탄절, 저는 합동분향소를 찾은 많은 분을 비롯해 동료 신부들과 함께 합동분향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와 연대의 성탄절 연합 성찬례’를 드렸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예전 같지는 않지만, 성탄절과 연말 분위기로 도시가 더 환하고 떠들썩한데 혹시라도 분향소를 찾는 분들이 줄어서, 휑하게 춥고 쓸쓸하게 느껴질까 봐 걱정하는 유족의 염려를 들었습니다. ‘모처럼 쉬는 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냈을 텐데…’라는 탄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는 자리에서 함께했습니다. 성탄의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한한 신이 유한한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입니다. 저희는 그런 신이 이 땅의 가장 낮고 연약한 자리, 고통과 슬픔, 불평등과 소외가 흘러들어 고이는 자리로 찾아온다고 믿으며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2022년 겨울, 이 땅에서 가장 깊고 무거운 고통과 슬픔이 고여 있는 자리가 어디일까요? 지금 가장 낮고 연약한 자리가 어디일까요? 저는 바로 당신이 있는 그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사 이후, 당신이 견디는 그 시간 말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이들은 이태원 거리를 유흥만이 넘쳐나는 거리로 묘사하고, 핼러윈 축제를 그저 근본 없는 이국 문화나 상업주의에 빠진 철없는 특정 세대의 놀이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태원 참사가 있던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유흥이나 상업주의에 물든 이국의 축제를 즐기러 왔다가 참사를 당한 사람들인 것처럼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태원 거리와 핼러윈 축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만 7년 동안 ‘용산나눔의집’에서 일하는 성공회 사제이자 사회 활동가인 제가 만난 이태원 거리와 핼러윈 축제는 그런 편견과 많이 달랐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렇듯 이태원 거리와 핼러윈 축제도 다양한 모습과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양성과 개방성, 그로 인한 섞임과 넘어섬을 소중하게 여기거나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태원 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동경하는 이들에게는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입니다.
더군다나 이태원 거리의 핼러윈 축제는 가면과 가장무도회로 상징되는 핼러윈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삶과 죽음의 교차를 말해주는 핼러윈 정신과 이야기가 나름대로 이태원에 적응해 계속되고 있었죠. 항상 지나치게 무겁고 ‘있는 그대로’보다는 기존 질서가 정해 준 모습과 방식에 맞춰 살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틈새와 색다른 공기를 찾아 많은 사람이 매년 이태원 거리의 핼러윈 축제를 찾아왔습니다.
참사 당일은 물론, 그 전날에도 이태원 거리의 핼러윈 축제를 찾았던 수많은 사람이 기대한 소소한 해방감과 즐거움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날만큼은 조금 낯설어도 괜찮고, 낯선 사람들과 낯선 모습으로 즐거운 인사를 나누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리, 그런 것 말이지요. 자주 찾든 가끔이든 그날 하루뿐이든 지나가는 길이든 이태원 거리와 핼러윈 축제는 ‘억압적으로 평균에 맞추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엄숙주의가 보통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야 하는 매일’에서 잠시 벗어나, 또 다른 낯섦과 만날 수 있는 자리이었을 뿐입니다.
그날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은 어떤 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근본 없이 상업주의에 열광하고 이국 문화인 핼러윈 축제에 물든 철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동짓날보다 핼러윈 축제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이야기에 더 친숙하게 된 건 그 나름의 맥락이 있습니다. 그러나 핼러윈 축제는 문제 많고 철없는 이국 문화이고 동짓날이나 부처님 오신 날, 크리스마스는 꽤 다른 것처럼 말하는 걸 들을 때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이국 전통이었거나 혼합적인 문화 현상이 아닌 게 하나라도 있을까요?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서울시, 대검, 용산구청 등 기관보고에서 기관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냥 평범한 일상 가운데 하루이었습니다. 소소하지만 조금 독특하고 색다른 하루를 누려보기 위해 발길을 옮겼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그 평범한 하루가 사회적 참사로 이어져 목숨을 잃을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 다시 보지 못하게 되리라고 짐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살아남은 생존 피해자들도 그날 그곳에서 그런 참사를 겪을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향한 자책과 고통의 화살을 멈춰 주십시오. 당신이 그날 그 자리에서 살아남아 버티고 있는 사람이든 그 참사의 목격자나 구조자이든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지역 주민이나 상인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는 건 더 어려운 그 참사의 짙고 무거운 고통과 아픔, 고립을 홀로 견디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 저희가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저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걸, 저희도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고, 서로의 곁을 지키려 하는 순간부터 많은 일이 시작됩니다. 어떤 일은 시도했거나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저희에게 연락하시는 일도 그런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은 결코 그 참사의 자리에서 도망간 것도, 살아남은 채 버려진 것도, 홀로 고립되어 내버려진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곁에는 당신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성탄 이야기의 핵심은 한 마디로 ‘임마누엘’, 즉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그런 하느님의 마음과 품, 손과 발이 되어 이웃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을 믿는 저희가 그 하느님의 마음과 품, 손과 발이 되어 끝까지 여러분 곁에서 동행하겠습니다.
오늘도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남 탓만 하며 회피하기 바쁜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생존 피해자들에게도 안녕한 하루가 속히 오기를 빕니다. 샬롬, 살람, 평화.
“아파도 소리 내지 못하는 당신, 여기 당신을 위한 빈자리 하나 있습니다.”
2022년 12월30일
자캐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