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붙인 홍보물을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떼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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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직의 존폐가 달렸다.”
지난해 4월 검찰 수사권 범위를 축소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논란이 한창일 때 검찰 구성원들은 다급한 마음을 모아 한목소리를 냈다. 개정안이 통과되자 법무부는 지난해 8월 ‘부패·경제범죄 등 중요 범죄’ 문구에서 ‘~등’을 최대한 활용한 시행령 꼼수로 국회 입법 취지를 뛰어넘었다.
검찰 조직 존폐를 ‘위협’할 뻔한 개정안을 뒤로한 채, 역설적이게도 올해 검찰 수사는 전 정권과 야당을 넘어 시민단체까지 영역을 넓히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경찰이 송치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의 일반교통방해 및 업무방해 혐의 사건을 집단행동, 노동, 중대산업재해 관련 인지 사건을 전문으로 맡는 공공수사3부(부장 이준범)에 배당했다.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요구하며 지하철 역사 안에서 일어난 옥내 집회를 ‘공공의 안녕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수사에 나선 것이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전장연의 지하철 선전전에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이라는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전장연, 정치권 등이 머리를 맞대 해결책을 찾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또한 역설적이게도 법원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건넸다. 법원은 지난달 19일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전장연은 열차운행 시위를 5분 넘게 지연할 경우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조정안을 냈다. 공사와 전장연 사이 분쟁은 법적 소송이 아닌 사회적·정치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공사는 이런 조정안을 뿌리치고, “1분만 늦어도 큰일”이라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등에 업고 되레 전장연을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추가로 묻겠다고 선포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은 대통령·여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 입맛에 맞는 전장연 수사뿐만 아니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북한 선원 북송 사건’,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사건,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 지난해부터 이어진 전 정권 수사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당을 겨냥한 수사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만큼, 검찰 수사가 ‘노조 손보기’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야권에서 “협치는 사라지고 수사만 남았다”는 비판과 함께 ‘검찰공화국’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법원과 검찰이 모인 서초동 법조타운은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회 갈등이 모이는 ‘하수구’라고도 불린다. “일반 국민은 살면서 서초동 법조타운에 올 일이 없는 게 좋고, 관심도 두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데 최근 국민적 관심사들이 모두 서초동으로 모이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해결할 문제도 법으로 끝장을 보려는 것 같다. 법원 재판과 검찰 수사가 메인 뉴스를 차지하는 나라의 국민은 불행한 국민이다.” 서초동에 몸담고 있는 한 현직 판사의 말이다. 올해는 ‘불행한 국민’이 되지 않길 바란다.
손현수 법조팀 기자
boy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