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만들어진 서울 성동구 경동초등학교 보행로. 보행로는 경동초와 경동유치원 땅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지난 12월 서울 강남구 언북초 어린이 사망사고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보행로 확보는 통학 안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누구 땅에 만드냐는 것이다. 이에 2018년 말부터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교 땅 일부를 떼어 스쿨존 보행로를 만드는 사업을 시행했지만, 정작 지난 4년간 서울에서 고작 5건만 완료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 배경엔 학교 땅을 둘러싼 지자체와 교육청의 해묵은 재산권 갈등이 있었다.
31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입수한 ‘한국자산관리공사 2022년 교육청 공유재산 업무 교육자료’를 보면, 행안부의 ‘등하굣길 정비사업’을 두고 시·도교육청은 “보행로 사업에 대해서 (지자체가) 교육청의 양보를 요구하는 실정”이라며 “학교 주변 토지를 보행로 조성을 위해 무상 임대할 경우 이번 사례가 선례가 돼 학교 주변 모든 신설 도로 부지는 무상 임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양쪽은 스쿨존 보행로 설치 방식에 대한 시각차가 뚜렷하다. 지자체는 보행로 설치를 위해 일일이 학교 땅을 매입할 경우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육청이 땅을 ‘무상 제공’ 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대신 보행로 설치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청은 지자체가 적법하게 필요한 학교 땅을 사들여 보행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불가피할 경우 지자체가 소유한 땅을 학교 땅과 교환하는 방식도 열어두고 있다.
이런 입장차를 정리하지 않고 2018년 말부터 행안부와 지자체가 교육청이 소유한 학교 땅 일부를 떼어내 어린이 통행로로 만드는 보행로 확보사업을 추진하면서 양쪽은 부딪치는 일이 여럿 발생했다. 특히 서울처럼 땅값이 비싸고 여유 부지가 적은 곳일수록 심했다. 서울 성동구 경동초 앞 보행로도 이 사업의 하나로 2019년부터 추진했지만 3년 만인 2021년 9월에서야 설치됐다. 보행로에 필요한 땅을 서울시교육청이 무상 제공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의견이 빠르게 좁혀지지 않은 탓이다. 교육청은 이 사례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사업이 완료된 사례는 최근 4년(2019~2022년)간 전국에서 모두 93건이다. 시행 초기인 2019년에 절반 가까이(44건·47%) 치중된 점을 고려하면, 최근 들어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지는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19건에 대해 개선이 요청됐지만 9건만 완료됐고 10건은 진행 중이다. 서울에선 지난해 금천구 동광초 1곳에 불과하다.
‘스쿨존 지정 도로에 보도 설치 의무화’가 담긴 도로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제기능을 하려면 양쪽의 ‘재산권’ 갈등부터 해결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는 이런 의견차를 해소하기 위해 그간 지자체와 교육청간 논의했던 방식을, 행안부와 교육부가 논의하는 구조로 사업 추진 방식을 변경할 방침이다. 행안부 안전개선과 관계자는 “교육청과 지자체의 입장 차가 크다보니 현장에서 논의가 쉽지 않다. 사업이 수월할 수 있도록 부처에서 논의하겠다”고 했다.
심재익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여유 부지 등을 고려했을 때 스쿨존 통행로 확보가 쉽지 않은 지역도 있다”며 “구체적인 요건은 당사자간 협의하되, 인도 설치가 어렵다면 보행자 우선통행 의무를 부여하는 ‘보행자 우선도로’를 만드는 식의 대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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