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꽝남성 퐁니마을 집에 머물던 응우옌티탄이 7일 승소 판결 뒤 변호인단과 화상 연결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제공
55년 동안 가슴 속에 자리잡혔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을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받은 응우옌티탄(63)은 “승소 소식을 듣고 너무도 기쁘고 즐겁다”며 환하게 웃었다.
응우옌티탄은 자신의 가족이 목숨을 잃었던 고향,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안구 퐁니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응우옌티탄의 대리인단은 7일 오후 승소 판결 뒤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베트남에 있는 응우옌티탄과 화상 연결했다. 변호인단이 연결해준 노트북 화상 연결 너머로 기자들과 만난 응우옌티탄은 “(희생 당한) 영혼들이 저와 함께하며 저를 응원해준 것이라 생각한다. 영혼들도 이제 안식할 것 같아 저는 너무도 기쁘다”고 말했다. 선고를 기다리느라 전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그는 밝은 목소리로 “재판장님께 감사드리며 지난 시간 저와 함께해준 변호인단과 한국 시민에게도 감사드린다”고도 말했다. 응우옌티탄은 8살이었던 1968년 2월 한국군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쏜 총에 옆구리를 맞았다. 당시 그의 가족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송에 참여한 이들은 늦게나마 한국 현대사의 잘못을 바로잡는 결정을 내린 사법부의 판단을 환영했다. 변호인단의 임재성 변호사는 “학살 주범에 대한 개인적인 형사처벌은 있었지만, 이번이 베트남전에서 이뤄진 민간인 학살 관련 정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로 추측된다”며 “판결에서 이긴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은 피해자들이 처음 문제를 제기한지 20년이 지나도록 이제껏 어디서도 공식적인 사실 인정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의 이선경 변호사는 “재판에서 ‘똑같은 과거사를 놓고 일본은 정부에 책임이 없다고 하고, 독일은 끊임없이 사죄했다. 대한민국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라고 물었다”면서 “대한민국이 가해국이기 때문에 대리인단으로서 욕을 먹는 일도 있었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우리는 베트남을 상대로도, 일본을 상대로도 떳떳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진석 변호사도 “대한민국 사법부가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1호 위로문과 사과문을 이번 판결을 통해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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