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동식 이장이 일소 ‘안순이’의 고삐를 쥐고 앞서가자 아들 영일씨가 쟁기질을 하며 뒤를 따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랴~와~와~쩌~쩌~.” 함동식(71) 이장이 고삐를 손에 쥐고 ‘안순이’를 천천히 몰아갔다. 아들 영일(42)씨는 쟁기를 비스듬히 밭에 박은 채 뒤따랐다. 안순이는 함 이장의 구령 소리가 익숙한 듯 ‘이랴’에 앞으로 가고, ‘와’에 멈추고, 고삐를 당기면 오른쪽으로, ‘쩌쩌’에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랴~와~와~쩌~쩌~”가 몇번 반복된 뒤 쟁기가 지난 밭자리는 마른 흙이 뒤집혀 촉촉한 속흙이 드러났다.
함동식 이장이 안순이를 몰고 있다. 박종식 기자
충남 홍성군 홍동면 모전마을의 함동식 이장은 56년째 쟁기질로 논밭을 갈고 있다. 열다섯에 농사일을 시작한 함 이장은 ‘농자천하지대본’(농업은 천하의 큰 근본)을 마음에 새기고 지금까지 3만여평의 논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살아오고 있다.
15년을 함께한 일소 ‘누렁이’를 2019년에 떠나보내고, 일곱번째 ‘쟁기질 동지’인 안순이와 함께 3천여평의 밭을 일구고 있다. 키우던 송아지 20마리 중 선택된 안순이는 3년여 동안의 훈련을 통해 일소로 거듭났다. 뿔 모양이 반듯하고 발굽이 둥글며 등뼈가 곧은 안순이는 일소로 제격이었다. “어려서 기틀을 잡아놔야 일소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겨.” 안순이는 쟁기질을 하다 돌에 걸리면 알아서 서고, 밭을 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더라도 함씨의 ‘와, 와’ 단 두 마디에 제 길을 찾았다.
함동식 이장이 안순이게 먹일 짚단을 자르고 있다. 박종식 기자
함 이장에게 안순이와 함께 하는 쟁기질은 자연을 살리는 작은 실천 중 하나다. “‘트랙터질’로 논밭을 갈면 빠르고 편하지만, 기계 부품과 기름이 세상으로 되돌아와 자연을 파괴시키는 법이여.”
잠깐의 휴식 뒤 함씨는 안순이를 다시 앞세웠다. 쟁기가 밭을 가르자 흙냄새가 뭉근히 사방으로 퍼졌다. 안순이 목에 달린 워낭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봄이 오는 들녘을 깨우고 있었다.
2023년 4월 1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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