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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울산교육 엉망이라 다 바꾸겠다’던 보수 후보의 압도적 패배 이유

등록 2023-04-19 11:00수정 2023-04-19 11:36

박용현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천창수 울산시교육감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로 대표되는 울산시교육청의 정책을 설명하는 천창수 교육감.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로 대표되는 울산시교육청의 정책을 설명하는 천창수 교육감.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울산의 첫 ‘진보’ ‘여성’ 교육감이었던 노옥희 전 교육감이 지난해 12월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뒤 치러진 4·5 보궐선거. 당선인은 노 전 교육감의 남편인 천창수(65) 후보였다. 진보·보수 후보가 1대1 대결을 벌인 선거에서 천창수 신임 교육감은 61.94%의 득표율로, 38.05%에 그친 상대를 너끈히 따돌렸다. 노 전 교육감이 지난해 6월 재선될 때 얻은 55.03%보다 한걸음 더 내디딘 결과였다.

천 교육감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으나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하다 구속된 이력 탓에 교사 발령을 받지 못했다. 전기기능사 자격을 따 울산 현대중전기(현대중공업)에 취업한 뒤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울산 현대공고에서 교사로 일하던 노 전 교육감은 산재를 당한 제자들을 돕다 천 교육감을 만났다. 1989년 결혼 당시 부부는 모두 해고·해직된 상태였다. 신문배달, 책 외판 등으로 10년의 생계를 이어가다 노 전 교육감이 1999년 먼저 교단에 복직했고, 천 교육감에게도 2002년 교사 발령의 기회가 열렸다. 대학 졸업 뒤 20년 만에야 꿈을 이룬 40대 늦깎이 초임 교사는 이후 19년을 평교사로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냈다. 그리고 다시 삶의 변곡점이 왔다. 가슴 아픈 부인과의 사별 뒤 무거운 질문이 던져졌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노 전 교육감의 교육철학을 누가,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지난 17일 울산시교육청에서 천 교육감을 만났다.

―전임 교육감의 남편으로서 선거에 나서는 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다.

“노옥희 교육감의 정책이 시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누군가 이어가지 않으면 다시 퇴보하니까 누군가 나서야 되는 상황이었다. 부담도 있었지만 노 교육감을 지지하고 사랑했던 많은 시민들이 천창수가 제일 낫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용기를 냈다.”

―선거 승리의 요인은 뭐라고 보나?

“너무나 명백하다. 후보가 딱 두 명 나왔는데, 한 명은 노옥희 교육감의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했고 또 한 명은 울산교육이 엉망이 됐으니 다 바꾸겠다고 했다. 시민들의 여론은 노 교육감의 정책이 좋다는 게 분명했다. 제가 선거에 질 경우 교육이 과거로 돌아갈 것을 걱정하면서 이웃들에게 노 교육감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적 분석이 많이 나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출신 지역인 울산에서 진보와 보수가 1대1 대결을 벌인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후보가 당선된 것은 정치적 민심의 반영이라는 분석인데.

“그것은 정말 잘못된 분석이다. 그냥 노옥희 교육감의 정책을 이어가느냐 중단시키느냐가 쟁점이었다. 이번에 함께 치러진 울산 남구 기초의원 보궐선거에 대해서는 정치적 민심을 분석해도 괜찮은데, 교육감 선거는 정말 정치적인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었다.”

―전임 교육감의 정책이 시민들에게 그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인상적이다.

“그렇게 된 배경이 있다. 시민들이 노옥희 교육감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라졌다고 평가한다. 이전에는 울산에 교육복지가 거의 없었다. 무상급식도 안 돼 있었고 무상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또 전임 교육감들이 선거법 위반이나 비리 사건으로 중도에 물러나는 일이 이어졌다. 그러다 5년 전 노 교육감이 당선되고 완전히 바뀌었다. 청렴도가 전국 최고로 올라가고 무상급식도 시행되고 고등학교 무상교육까지도 금방 되고, 또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아이 하나하나에 대해 세심한 정책들을 내니까, 시민들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것이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취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학교 수업을 하다 보면 공부가 약간 뒤처지는 아이들이 있는데, 실제 수업을 해보면 교사가 뒤처진 아이를 챙겨 가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런 학생들이 수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또 ‘나는 원래 공부를 못하나 보다’라며 자존감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수업시간 중이나 방과 후에 ‘협력 강사’를 붙여 진도를 따라갈 수 있게끔 지원해주는 제도를 확대하려 한다. 수업 시간에 교사 두 명을 투입하는 1수업 2교사제를 현재 초등학교 1·2학년에만 시행 중인데 초등학교 전학년과 중학교까지 넓혀가려 한다. 또 학교 수업을 막 시작하는 초등학교 1학년 같은 경우 한 반에 학생이 28명, 24명 이렇게 되면 담임 선생님이 일일이 아이들을 다 돌봐주기가 힘들다. 울산에서는 1학년 한 반을 20명으로 편성하고 있다. 그건 다른 지역도 본받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집안 사정이라든가 장애를 입고 있다거나 또다른 요인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만큼은 똑같이 출발하고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공교육을 더 강화할 생각이다.”

천창수 울산시교육감이 17일 울산시교육청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천창수 울산시교육감이 17일 울산시교육청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노옥희 교육감이 현직에 있을 때 교육 정책에 대해 고민도 나누고 조언도 했었나?

“너무 깊이 이야기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주로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왜곡되는 지점은 없는지를 현장 교사로서 전달해줬다. 결정은 어차피 교육청에서 해야 되니까. 그동안 새롭게 시도하는 정책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 구체적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현장을 세세히 살피면서 정책을 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공약은?

“수업을 바꾸고 싶다. 시험을 대비한 지식 전달 위주의 수업이 아직도 많고, 토론 수업이라든가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과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의 비중이 여전히 낮다. 이 비중을 좀 더 높여서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학교에서부터 미리 키워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가 완전히 외딴섬 같다. 학교 안은 사회와 전혀 다른 세상 같아 보인다. 예를 들면 사회 수업 시간에 민주주의를 공부하지만 집에 가도 민주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적이고 학교에서도 모든 행사는 선생님이 다 기획해서 아이를 동원시키고 규칙을 정할 때도 학부모와 교사만 모여서 한다. 이래서는 실제 민주주의를 몸으로 배우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고 의견이 다르면 토론해야 하고 그 속에서 접점을 찾고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학교를 최대한 수업 내용과 일치되게 운영하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학교 수업에서 배운 것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게 ‘삶과 배움이 일치하는 교육’이다. 그렇게 학교 문화 전체를 바꾸고 싶다.”

―입시 교육을 중시하는 학부모들은 이런 방향에 무관심하거나 반발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방향을 강조한다고 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안 하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 중심으로 굴러가게 돼 있다. 영재교실도 있고 영재교육원도 있고, 과제도 낮은 과제, 중간 과제, 높은 과제를 다 주고, 선생님들이 다 맞춰서 하고 있다. 프로젝트 수업이나 토론 수업은 그 자체로 수준 높은 것이다. 다만, 공교육에서 배제됨으로써 사회에 나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생겨서는 안 되겠기에 거기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수업에서 모둠을 짤 때도 공부 잘하는 학생, 그렇지 못한 학생을 섞어서 짜면 더 잘 된다. 교사보다 친구한테 더 편하게 묻기도 하고 서로 토론하면서 많이 배우기도 한다.”

―취임 뒤 1호 결재가 ‘교육감 직속 학교폭력 전담기구 설치를 위한 전담팀 구성’이었다. 학교 폭력 문제에 평소 관심이 많았나?

“교사들은 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학교 폭력 문제는 교권 침해와 같은 양상이다. 똑같은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에 학교 폭력이 많은 학교는 교권 침해도 많다. 그런데 학교 폭력을 당하는 아이에게 교사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상처가 너무 깊게 남고 치유하기도 어렵다. 학교 폭력이 건수 자체는 많지 않지만, 이게 무서운 게 한 건만 발생해도 아이들이 늘 두려움에 떠는 상태가 되고 힘센 아이를 말리지도 못하고 자기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동조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인간성을 많이 다치게 된다. 자존심도 상하고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고. 이 문제는 꼭 해결해야만 학교가 평화로운 가운데 서로 협력하면서 공부를 하든 뭘 하든 잘할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은 뭐라고 보나?

“근본 원인은 ‘근본’을 뭘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지 않겠나. 우리 사회가 워낙 무한경쟁 사회다 보니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짓밟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거기에서 아이들도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개별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했는데, 그만큼 교육청의 역할이 중요할 듯하다.

“교육청이 학교에 예방 차원의 대책들을 많이 제시해 줘야 한다. 지금도 예방 교육은 많이 하고 있는데, 영상을 보여주거나 강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더해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학교 텃밭을 반별로 가꾸다 보면 같이 협동하고 식물을 키우면서 생명에 대한 소중함도 느끼지 않겠나. 문화예술이나 체육 활동을 함께 즐기면서 공감 능력도 키우게 하려고 한다. 더 역점을 두려고 하는 것은 학생 자치활동을 왕성하게 해서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라고 느끼면서 동시에 책임 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 교사가 학생을 감시하는 체제가 돼 있는데, 그게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나서서 ‘우리 학교를 학교 폭력 없는 학교로 만들어보자’는 캠페인을 한다면 훨씬 좋지 않겠나. 학생들이 친구들 사이를 더 잘 아니까 미리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끔 다독이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학부모회의 역할이다. 학교마다 전체 학부모회는 잘 구성돼 있지만, 일부 학부모들만 참여해서는 학교 폭력 해결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반별로 학부모회를 활성화해 반 전체 학부모들이 다같이 참여하고 한 달에 한 번이든 두 달에 한 번이든 모여 얼굴도 익히고 서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부모들끼리의 유대관계가 강화되면 아이들 사이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해도 부모들이 설득하고 다독여주면서 사과와 화해를 이끌어줄 수 있고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장 좋은 해법은 진정어린 사과와 화해다. 이를 위해선 학생들의 중재, 학부모들의 중재가 필요하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학교 폭력 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입시에 반영을 많이 하겠다는 취지인데 이를 두려워하는 학생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 점에서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는 대처가 더 힘들어질 것 같다. 부모들이 더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법적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고 소송이 장기화하다 보면 결국은 피해 학생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되는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본다.”

천창수 울산시교육감이 17일 울산시교육청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천창수 울산시교육감이 17일 울산시교육청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최근 스쿨존 교통사고로 어린 학생들이 숨지는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교통사고든 사회적 참사든 국가나 교육청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면 좋겠다. 어제가 세월호 참사 9주기였는데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같은 경우 국가가 자꾸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니까 아직도 갈등으로 남아 있고 대책도 잘 세우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 차원에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학생들의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재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화재나 지진, 울산의 경우 방사능 누출까지 만일의 재난 가능성에 대비해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안전교육원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현장을 다녀보니 통학로가 불안하다는 민원이 많더라. 보행로, 안전 펜스, 횡단보도 등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의할 예정이다.”

―교사 시절 북유럽교육복지연구회 회장을 지냈는데, 연구 내용 중 실제 정책에 적용되는 게 있나?

“직접 가보기도 했는데, 그곳에선 뒤처진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철저하더라. 방과 후에 남겨서라도 정말 기초학력이 튼튼해지도록 하고 충분히 진급할 정도의 능력이 됐을 때 진급시킨다. 한 명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는 것을 거기서 많이 배웠다. 또 학부모회에도 정말 많은 학부모가 참여하더라. 문제가 발생하면 부모들끼리 거의 다 해결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것을 공약에 반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복지제도가 잘 돼 있고 직업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보니 입시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고등학생도 오후 3시반이면 수업을 마치고 각자 원하는 체험활동을 한다. 동네마다 청소년 문화의 집 같은 게 있어서 댄스도 하고 지역신문도 만들고 녹음실에서 노래도 하고 연극·스포츠 활동도 한다. 당장 쉽지는 않지만 원하는 학생들이 이런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학교 가까운 곳에 체험시설을 더 많이 만들어보려고 한다.”

―울산 시민과 학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격려도, 비판적인 얘기도, 이런저런 요구도 들었다. 이제 교육감 됐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기보다는 울산 교육을 시민과 교육청이 함께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시민들 눈높이에서 느끼는 바를 가감 없이 전달해 주면 큰 힘이 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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