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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집회 금지를 금지한다”…법원 판단에도 계속 막는 경찰

등록 2023-05-10 14:47수정 2023-05-10 15:00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들이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찰에 둘러쌓인 채 집회를 열고 있다.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들이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찰에 둘러쌓인 채 집회를 열고 있다.

“‘집무실 앞 집회 금지’를 금지한다.”

10일 낮 12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금지된 집회’가 열렸다.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지난달 19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집회를 신고했으나, 이틀 뒤 금지 통고를 받았다. “귀 단체가 신고한 집회 장소는 대통령 집무실(관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입니다(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라는 게 이유였다. 지난 1월 법원은 경찰의 이러한 집회 금지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경찰은 항소한 상태다. “아직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경찰은 재차 ‘집무실=관저’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공권력감시대응팀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용산경찰서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3919건의 집회신고 중 173건(4.41%)에 대해 집회 금지 통고를 했다. 집회신고를 금지한 비율이 많아야 1%대인 다른 경찰서와 비교해 높은 수치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때문으로 보인다.

공권력감시대응팀은 “불필요한 일”이라며 법원에 경찰의 금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법으로 인정된 집회 자유를 위해 별도의 조처를 하는 것은 낭비라는 이유에서다. 이날 금지된 집회가 열린 배경이다.

오전 11시40분께 집회 시작 전부터 주최자 쪽과 경찰은 ‘집무실 앞 집회가 가능하냐’를 두고 말싸움을 벌였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상임활동가는 “집회신고를 절차에 맞게 했으니 대통령실 앞에서 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허가되지 않은 집회니 길 건너편으로 이동하라”고 맞섰다. 약 20분간 승강이를 벌인 뒤 대통령실 정문 기준으로 왼편 100m 떨어진 버스정류소 인근 인도에서 집회가 시작됐다. 공권력감시대응팀 10여명 주변으로 서울경찰청 기동대 2개 중대(약 20명)가 둘러쌌다.

“이곳은 신고한 장소가 아니다. 건너편은 집회가 되고, 이곳은 안 된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다.” 랑희 활동가는 집회를 시작하면서 발언했다. 그는 “집행정지 소송을 하는 것이 언제부터 집회의 룰이 되었느냐”며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집회하는 관행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진 이후, 대통령실 인근 집회는 ‘신고→경찰의 금지 통고→경찰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재판부 인용 결정’이란 절차를 거친 뒤에야 열리고 있다. 지난 1년간 이 방식으로 이뤄진 집회만 10여건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주최자 쪽과 경찰에서도 불필요한 경비 지출이 발생했다. 무소속 이성만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경찰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등 4개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소송에 대응하느라 변호사 수임료(착수금, 성공보수) 8000만원을 책정했다. 패소한 뒤에도 항소를 이어가기 때문에 경찰의 소송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한희 변호사는 이날 “법원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판결문을 똑같이 쓴다. 우리도 복붙(복사해 붙여넣기)한다. 이런 소송을 무슨 의미로 하냐”면서 “소송비용도 40여만원으로 부담되는 돈”이라고 말했다. 또 “경찰의 금지 통고 처분은 집회를 귀찮게 만들어서 집회를 포기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집회는 공식적으로 허가된 집회가 아닌 탓에 경찰도 12시20분을 기점으로 5분간 3차례 ‘해산 명령’을 했다. 경찰은 “강제 해산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실제로 해산 조처가 이뤄지지는 않아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다만, 경찰은 채증한 자료를 수사과에 전달할 예정이다. 집시법 위반 혐의를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경찰은 ‘교통 소통’을 이유로 대통령실 인근 집회를 막을 수 있도록 집시법 12조와 연관된 시행령을 개정했다. 집시법 12조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시위에 대해 관할 경찰서장이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경찰은 시행령을 바꿔 주요 도로에 대통령실 인근 도로인 ‘이태원로’와 ‘서빙고로’ 등을 포함했다. 오는 7월 개정 시행령이 발효되면 법원에서 번번히 패하고 있는 ‘집시법 11조 근거 금지 통고’가 아닌 ‘집시법 12조 근거 금지 통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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