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 특강 수업에서 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이 ‘서진학교’ 설립 당시 삭발하고 투쟁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윤연정 기자
지난 4월27일 경희대 청운관 대강당에서 발달장애인 딸을 둔 이은자씨는 마이크를 들고 강연을 시작했다.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 센터장인 그는 발달장애인 취업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책임지고 있다. 그의 곁엔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을 제작한 김정인씨가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떤 이유로 함께 강단에 섰을까? 이은자씨는 지난해 5월 노회찬재단과 <한겨레>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 필진이다. 이 코너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탔던 6411 새벽 버스에 몸을 실었던 이주민과 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들은 직접 필진으로 나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소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환기·조명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그 취지에 공감해 이번 학기부터 ‘6411의 목소리와 노동 존중 사회’ 교양 과목을 개설해 수업을 진행 중이다.
이씨와 김정인씨는 이날 강단에 올라 발달장애 학생들의 교육권과 노동 문제에 대해 강연했다. 김씨는 <학교 가는 길>에서 장애 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에게 무릎 꿇고 학교 설립을 호소한 끝에 2020년 개교한 서울 가양동 특수학교 ‘서진학교’의 설립 과정을 다뤘다.
이날 경희대 대강당을 가득 채운 학생 170여명은 두 사람의 강의가 끝나자마자 질문을 쏟아냈다. “장애인 고용 의무제에 따라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경희대는 고용 대신 벌금을 내고 있어요. 고용 의무를 돈으로 사는 거 아닌가요?” 학생의 질문에 이 센터장은 “대학교 외 많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기보다 벌금을 내는 게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반복적인 패턴을 좋아하는 발달장애인은 일정한 규칙과 공간을 잘 지키기 때문에 경희대에서 청소부, 사서 등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학생들이 ‘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냐’고 학교에 계속 물어보면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 특강 수업에 옥천군 결혼이주여성 협의회 부티탄화씨가 강사로 나와 강의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4일엔 부티탄화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과 한인정 작가(협의회 활동가)가 강연자로 나서 이주여성의 차별과 노동 문제를 이야기했다. 부티탄화 협의회장은 서툴지만 똑 부러지는 한국말로 “결혼이주여성은 도움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다”라며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2020년에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들었고, 앞으로 전국 단위 이주민협의회를 만들어 더 많은 부티탄화들이 잘 살 수 있도록 꿈을 꿀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유이분 작은책 대표(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는 “부티탄화 협의회장이 강연 도입부에 3분가량 베트남어로 설명했을 때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함을 느꼈다. 이 느낌이 이들이 한국에 와서 오랫동안 느꼈을 답답함이었겠다는 생각을 하니 울컥했다”고 말했다.
수업을 이끈 김진해 교수는 강연이 이어질수록 노동자와 사회를 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달라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가 진행될수록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아닌, 경험해보지 못한 구체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며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깨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그 또한 고유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노동의 개념, 소수자와 장애인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것 같다”고 밝혔다.
4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 특강 수업에 옥천군 결혼이주여성 협의회 부티탄화씨에게 이준석 회계세무학과(4학년) 학생이 질문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번 학기 해당 교양 과목을 신청한 학생은 모두 195명이다. 대부분 처음엔 학점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게 흥미로울 것 같아서 등 가벼운 생각으로 강의를 신청했지만, 학기의 절반이 지난 지금 학생들은 우리 사회의 ‘차별’ ‘편견’ ‘노동’에 대한 저마다의 묵직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입 모아 말한다.
수업은 현장 강연과 질문, 강연 뒤 간단히 소감을 적어 내는 ‘1분 보고서’와 에세이 제출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책으로 이론을 배우는 것을 넘어 눈앞에 살아 있는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강의를 평가했다. 윤인서(정치외교학과 2학년)씨는 “지금까지 내가 겪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시대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투쟁해 쟁취한 노동권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의 노동도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노동이 나와도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강연을 찾은 소설가 하명희(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씨는 “(소외된 이들에게) 꾸준히 마이크를 주는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이들이 대학교에서 젊은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소중한 기회이자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 특강 수업에 옥천군 결혼이주여성 협의회 부티탄화씨가 강사로 나와 강의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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