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전 수석부위원장 강아무개씨의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강제 수사에 착수한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지난 3월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노총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사내변호사로 일하는 ㄱ씨는 회사 입사 3년차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회사 대주주의 뇌물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이 회사 내부 파일과 컴퓨터, 휴대전화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ㄱ씨의 카카오톡 메신저와 전자우편도 들여다봤다. 검찰은 ‘범죄와 연관이 있는’ 메시지나 전자우편만 압수하겠다고 했지만, 휴대전화에는 친구나 가족과 나눈 대화도 담겨 있었기에 ㄱ씨는 불안했다. ‘선별작업에 참여하겠느냐’고 검찰이 물었지만 ㄱ씨는 “수사기관에 웬만하면 협조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유리하다”는 변호인의 조언을 듣고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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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스마트’하다. 거의 모든 일상이 스마트폰에서 이뤄지는 이유다. 내밀한 사생활부터 외부에 공개되어선 안 될 업무 기밀까지 모두 스마트폰을 거친다. 그리고 지우기 힘든 흔적을 남긴다. 수사기관이 스마트폰 확보에 목을 매는 이유다. 문제는 범죄와 무관한 정보도 스마트폰에는 넘쳐난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은 ‘범죄 관련 정보만 골라 압수한다. 압수당한 이가 수색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사후 규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 더 촘촘한 사전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되자 지난 2월 대법원이 움직였다.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수사기관 등을 불러 심문하겠다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내놨다. 지금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서류만 보고 압수수색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논쟁이 길어지고 있다. 애초 입법예고기간은 지난 3월14일, 시행일은 6월이었다. 2일 대법원은 형사법연구회·한국형사법학회와 함께 ‘압수·수색영장 실무의 현황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연다. 대법원은 조만간 논의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최근 강제수사의 중심축이 인신구속에서 압수수색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한다. 압수·수색영장 청구는 2011년 10만8992건에서 2022년 39만6671건으로 3.6배 늘었고 발부율도 87.3%에서 91.1%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구속영장 청구는 3만7948건(발부 2만8960건)에서 2만2589건(발부 1만8384건)으로, 체포영장 청구는 5만9173건(발부 5만8105건)에서 2만7426건(발부 2만6892건)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전자정보를 생성·보관하는 게 흔해지면서 수사기관도 수사 초기에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그 과정에서 압수·수색영장 청구가 급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ㄱ씨 사례처럼 휴대전화 등 디지털 증거를 압수수색할 때 사생활 정보까지 탐색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선별 없는 압수수색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을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게다가 언제든지 별건수사로 이어져 피의자에 대한 부당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성이 있다.
수사기관에 넘어간 디지털 증거로 인한 사생활 침해 우려는 오래된 주제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사이버 수사 및 디지털 증거수집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디지털 증거를 압수·수색당했던 18명 가운데 88.3%가 ‘사생활 침해’를 당했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집필자인 권양섭 군산대 교수(법학)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체포 영장에 비해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 기준이 낮다. 권리 침해가 적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뺏기면 모든 사생활이 노출될 위험이 생긴다. 기존 압수수색 영장 발부 기준을 휴대전화 등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건 논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등 디지털 증거 압수 방식은 피의자 권리를 더 보장하는 형태로 진화해왔다. 2011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휴대전화와 같은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시 ‘원칙적 선별압수, 예외적 매체압수’를 규정했다. 영장에 기재된 범죄 관련 정보만 압수수색할 수 있는데 그게 어려울 경우 예외적으로 매체 자체를 압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휴대전화는 현장에서 포렌식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예외’에 해당된다. 일단 수사기관이 휴대전화를 거주지 등에서 가져와 수사기관의 사무실에서 압수할 전자정보만 선별한다.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원칙을 위반해 디지털 증거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면 법원은 ‘위법한 증거’로 판단한다. 지난 2012년 검찰은 조기문 전 새누리당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이 공천을 약속하고 현역 의원들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요구한 이른바 ‘새누리당 돈봉투 사건’을 수사했다. 이때 조 전 위원장의 휴대전화를 조사하다가 윤영석 의원이 공천 대가로 3억원을 약속했다는 혐의를 발견해 기소했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조 전 위원장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은 다른 범죄를 수사하면서 발부됐기에, 해당 영장으로 확보한 증거는 윤 의원 범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판례 이후 휴대전화 압수수색 과정에서 다른 범죄 관련 증거가 나오면 영장을 새로 발부받아야 한다는 법리가 확립됐다.
압수한 증거를 선별할 때 피의자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원칙은 2015년 대법원 판례로 확립됐다. 검찰은 2011년 종근당의 하드디스크를 압수수색하면서 종근당 쪽 참여하에 하드디스크 내 전체 정보를 복제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범죄 관련 정보만 선별할 때는 종근당 쪽 참여 없이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별도의 범죄 혐의를 발견해 별건수사를 했다. 당시 대법원은 압수 뒤 선별작업도 영장집행 절차로 봐야 한다며 피의자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위법이라고 봤다.
일련의 판례를 통해 ①범죄 혐의와 연관된 것에 한해 선별적으로 압수가 이뤄져야 하고 ②피의자의 참여권이 전 과정에서 보장돼야 한다는 휴대전화 압수수색 원칙이 자리잡았다.
수사기관은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일단 사무실로 가져가지만 ‘범죄 혐의와 연관된’ 정보만 압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범죄 혐의와 연관된’이라는 문구 앞에서 원칙이 무너지기 일쑤다. 사생활 정보를 들여다보더라도 ‘범죄와의 연관성’을 판단하기 위함이라고 수사기관이 주장하면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권양섭 교수는 “그동안 법원은 피의자 참여권을 보장해 수사기관이 범죄와 무관한 정보를 탐색하지 못하도록 막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피의자의 참여권이 개인정보 침해를 막는 데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경찰로부터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당한 강진구 인터넷 매체 <더탐사> 대표는 “선별작업에 참여를 할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가 나를 샅샅이 턴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집 앞에서 유튜브 생중계를 하다 스토킹 혐의로 수사받았다. 강 대표 집에 있던 휴대전화 여섯대를 경찰이 찾았는데, 아들이 초등학교 때 쓰던 2012년형 모델 휴대전화도 포함됐다. 휴대전화에는 가족과의 단톡방, 친구들과의 메신저 대화가 있었지만 경찰은 “일단 어떤 대화인지 봐야 범죄와 관련 있는지 알 수 있다”며 강씨의 반대에도 휴대전화 속 모든 메시지 내용을 들여다봤다. 영장전담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압수수색 영장은 사실상 자동발부다. 범죄자를 잡겠다는데 기각해버리면 판사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압수수색 범위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는 점을 활용해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압박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 원장 출신의 홍기태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와 연관되었는지 검토해야 하니 사적인 대화·메시지도 보겠다’고 하면 피의자는 혹시 다른 범죄 혐의가 드러날까 봐 (별건수사의) 압박을 느끼거나 주변 지인의 정보까지 노출될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사실상 자백 강요가 될 수 있다”며 “압수수색의 범위를 사전에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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