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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학살에 남편 잃은 ‘말해 할머니’의 슬픔에 조금 다가섭니다

등록 2023-06-05 05:00수정 2023-06-05 09:26

전쟁의 달에 개봉하는 전쟁 다큐영화 <206:사라지지 않는>의 허철녕 감독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의 여정을 담은 다큐영화&lt;206:사라지지 않는&gt;을 6월 개봉하는 허철녕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의 여정을 담은 다큐영화<206:사라지지 않는>을 6월 개봉하는 허철녕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 영화는 땅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땅에서 사람의 뼈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뼈에서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정전협정 70년, 전쟁의 달을 맞아 <206:사라지지 않는>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달 21일 전국의 극장에서 개봉한다. 숫자로 된 제목이 생소하다. 206은 인간 몸에 있는 뼈의 개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영화 속의 유해들은 온전히 206개의 뼈를 갖추지 못했다. 상당수가 부식돼 사라졌거나 몸과 몸이 서로 엉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의 풍경이다. 2018년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에서 2021년 대전 낭월동 골령골까지 6곳의 현장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허철녕(37) 감독은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로 삽과 호미를 들었다가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영화는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돼 다큐멘터리 대상에 해당하는 비프메세나상을 받았다. 허 감독을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디엠시(DMC)첨단산업센터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lt;206:사라지지 않는&gt; 영화 포스터.
<206:사라지지 않는> 영화 포스터.

영화는 말해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말해 할머니(1928~2019)는 학살 터로 가는 영화의 여정에서 출발점이었다. 2010년 <명소>로 데뷔한 허 감독은 2014년 옴니버스 형식의 다큐 <밀양, 반가운 손님>을 공동연출하는데, 이때 만난 사람이 말해 할머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의 한 가운데 있던 할머니와 열흘간 함께 지내면서 마지막 날 “소원이 뭐냐”는 질문을 던진다. 뜻밖에도 “송전탑을 꼭 뽑아주었으면 좋겠다”가 아닌 “글을 쓰고 싶다”는 답이 돌아온다. 일기를 쓰면 한 방 가득 채울 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데 까막눈이라고 했다. 할머니를 잊히지 않는 사람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아예 거처를 경남 밀양시 상동면 인근 고시원으로 2년6개월간 옮겼다. 그렇게 2017년 <말해의 사계절>을 완성한다.

말해 할머니는 1950년 전쟁 직후 보도연맹원 교육이 있다면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은 남편 이야기를 했다. 그는 1960년 4.19혁명 직후의 어느 날 경찰로부터 남편이 묻혔을지 모르는 매장지 발굴에 관한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간다. 경북 청도군에 있는 곰티재였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북이 쌓인 유해는 형언할 수 없이 끔찍했다. 그중 정수리 부분에 대못이 박혀 흙벽에 매달린 채로 허공을 응시하는 두개골을 본 뒤 현기증과 함께 공포를 느낀 할머니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고, 그날의 지옥도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다. 송전탑 투쟁에 관한 물음으로 시작했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이야기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할머니께서 먼발치를 바라보거나 담배를 피울 때 굉장히 공허하면서도 깊은 슬픔이 느껴졌어요. 저 슬픔의 근원에 학살 터가 있다고 상상했고 직접 봐야겠다 결심했어요.”

&lt;206:사라지지 않는&gt; 영화 포스터.
<206:사라지지 않는> 영화 포스터.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010년 해산한 뒤, 2014년 민간 차원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을 조직한다. 허 감독은 2017년 경남 진주시 명석면 야산 발굴현장부터 공동조사단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2018년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부터 촬영했다. “설화산에서는 부역혐의자들 가족이 처형되었어요. 죄다 여성과 아이들이었어요. 감정적으로 힘들었죠.” 영화 속에서는 설화산에서 유해발굴을 하던 단원의 꿈 증언 장면이 나온다. 처음 보는 어르신이 다가와 “임신하셨습니다”는 말을 해주는데 며칠 뒤 나무뿌리 등걸에 걸쳐진 척추뼈를 발견한다. 엄마 등에 업힌 아기 뼈였다. 자신을 찾아달라는 영혼의 몸부림이었을까.

여러 학살 터의 유해들과 함께 다양한 인물군이 영화에 등장한다. 국군유해발굴단 단장도 지냈던 유해발굴 전문가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진실화해위 조사관 출신인 안경호·홍수정, 누구보다 애타는 마음으로 현장을 지킨 유족 김장호·김광욱, 그리고 젊은 자원봉사자 김나경·김소현. 이들의 특별한 헌신이 조화를 이루며 유해발굴을 가능케 했다. 허 감독은 “촬영 기간 내내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과거가 아닌 지금의 문제로 바라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젊은 친구들은 전쟁이 너무 멀고, 그 위 세대들은 프레임을 씌워서 보는 경향이 있지요. ‘정말 좌익들 아냐? 왜 우익 죽은 건 발굴 안해?’ 하면서 말이죠. 두 세대 모두 영화에서 얻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허철녕 감독이 지난 1일 &lt;한겨레&gt;와 만나 &lt;206:사라지지 않는&gt; 영화의 제작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허철녕 감독이 지난 1일 <한겨레>와 만나 <206:사라지지 않는> 영화의 제작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원래 제목은 그냥 <206>이었다. 막판에 편집감독이 부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사라지지 않는’. 무엇이 사라지지 않을까. “살아남은 유족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죠. 갈라지고 부서질지언정 유해 그 자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허 감독의 차기작은 시를 쓰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다. 제목은 <기계의 나라에서>. 대한민국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그들의 아름다운 시를 통해 성찰해보려는 작품이라고 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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