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19일 현대자동차 울산 1공장을 점거해 파업중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외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파업으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 노동조합 등 참여 주체의 역할에 따라 다르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법원은 함께 저지른 불법 행위이니 다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봤다. 이 때문에 기업(사용자)이 손해액 전체를 노조가 아닌 ‘미운털’이 박힌 소수 노동자에게 몰아줄 수 있었다. 노조 파괴용으로 손해배상 소송이 악용된다는 비판이 거셌고,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주체별로 책임 정도를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추진되는 배경이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조(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사건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새롭게 제시한 법리로 사건을 추가 심리하라는 취지다.
현대차는 2010년 11월15일~2010년 12월9일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울산공장 1·2라인을 점거해 278시간 동안 공장이 중단됐고, 이 때문에 271억여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노동자 4명을 상대로 20억원을 청구했다. 1·2심은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인정해 회사의 청구액 20억원을 전부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불법 파업에 따른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책임은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기존 판례들을 적극 해석한 결과다.
대법원은 “노조의 의사결정이나 실행 행위에 관여한 정도 등은 조합원마다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참여 주체들에게 공동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봤다. 조합원들이 손해액을 책임·역할의 정도와 무관하게 공동으로 갚아야 하는 점을 악용해 일부 회사는 ‘소수 조합원’ 외에는 소를 취하했고, 이런 경우 끝까지 남은 이들이 전체 금액을 책임져야 했다.
불법 파업으로 인한 회사 손해액 산정 방식도 새롭게 제시했다. 기존 대법원은 파업으로 생산량이 감소한 경우, 그 기간 동안 지출한 고정비용을 손해액으로 인정했다. 이날 대법원은 파업 이후 노동자들이 생산량을 만회했다면, 파업 기간 동안 지출한 고정비용을 손해액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현대차는 불법 파업으로 공장이 중단돼 생산과 매출이 감소했다며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추가 소송을 4건 더 냈다. 원심은 노동자들이 배상해야 하는 금액을 24억여원으로 계산했는데,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와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새 계산법에 따라 모두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현대차의 경우 예약 판매 방식으로 자동차가 판매되는데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라서 생산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매출 감소로 직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파업 후 연장근무나 휴일근무를 통해 부족 생산량이 만회되었을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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