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 인도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의 1박 2일 문화제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회 참가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해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보장하겠다고 도입한 2000명 가까운 ‘대화경찰관’이 현장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의 집회 대응이 강경 기조로 바뀌면서 ‘평화 집회’도 불법 집회로 규정돼 강제해산 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와 진압’에서 ‘집회시위 자유 보장 및 참가자 보호’로 진화해온 지난 6년간의 집회 대응 패러다임이 윤석열 대통령의 강경 발언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은 2018년 8월 1556명으로 출발한 대화경찰관이 꾸준히 늘어 현재 1929명이 활동 중이라고 19일 밝혔다. 정보·경비경찰 등으로 구성된 ‘대화경찰관’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참여자들의 가교 구실을 하며 마찰을 방지하는 업무를 맡는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집회에서 경찰이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쓰러뜨려 숨지게 한 뒤 도입된 제도다.
대화경찰제는 안착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도입 4년째인 2021년 6월 한국경찰학회보에 실린 ‘한국형 대화경찰 제도 운용의 효과성 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대화경찰이 현장에서 활약하는 경찰서는 그렇지 않은 경찰서보다 위법 시위가 55%가량 감소하고, 집회·시위 지속시간은 3%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대화경찰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제도 자체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6∼17일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진행한 1박2일 집회 이후 경찰의 대응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3년 전인 2020년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별도 집회 신고 없이 대법원 앞에서 노숙문화제를 진행해왔던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은 한달새 두 차례 강제 해산당했다. 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 김수억씨는 “3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경찰 협조하에 노숙문화제를 평화롭게 진행해왔는데, 이제는 집회도 열기도 전부터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대화경찰은 아무런 권한이 없고, 경찰서장이 해산 명령해버리면 따를 수밖에 없다 보니 대화의 여지 자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31일 전남 광양제철소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간부를 경찰이 폭력으로 진압한 사건 이후 대화경찰과 기본적인 소통조차 끊은 상태다. 민주노총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대화경찰을 통해 ‘경찰 대응이 너무 과하다’고 의견을 전달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윗선에서 강경 기조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대화경찰에게 실질적인 조율 권한이 없다 보니 할 수 있는 역할이 축소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2018년 도입 이후 꾸준히 확대 기조를 보여왔던 대화경찰제 자체가 축소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대화경찰이 집회를 관리해왔는데, 이제는 위법 사항이 발견되는 즉시 해산 명령하고, 강제 진압하다 보니 대화경찰관이 개입할 여지 자체가 사라졌다. 대화경찰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충북경찰청 소속인 한 대화경찰관은 “지난 몇년 동안 보장과 대화,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집회 관리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고 있었는데, 다시 과거로 회귀한다면 대화경찰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역할이 축소되다보니)예전보다 집회에 투입되는 대화경찰 수도 현저히 줄었다”고 했다.
지난 5일 열린 국가경찰위원회 정기회의에서도 대화경찰제가 의제로 올랐다. 국가경찰위원회는 경찰의 주요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위원회다. 위원회는 대화경찰제가 현재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지, 향후 어떻게 운영할지 등을 보고하라고 경찰청에 요구했다. 경찰청은 운영상의 변화는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력을 동원하기 전에 대화경찰이 현장에서 주최 쪽의 불법 행위를 충분히 설명하거나 경고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주최 쪽이 아닌 시민과의 마찰을 줄이는 데도 대화경찰관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