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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누구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영아살해 동기는 ‘출산 공개 두려움’

등록 2023-06-25 16:02수정 2023-06-30 14:18

2013~2020년 영아살해 1심 판결문 분석
출산보호제로 “병원서 익명 출산 허용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친모에 의한 ‘영아살해’ 사건들은 주로 임신·출산 사실을 숨겨야 하거나,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벌어졌다. 임신 및 출산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까 두려워한 이들이 의료기관이나 사회복지기관 등에 도움을 구하길 꺼리면서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출산 시 익명성을 보장하는 출산보호제를 도입하고, 미혼모 지원을 내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성희 경찰대 교수가 지난 2021년 한국교정학회지에 게재한 ‘한국 영아살해 고찰’ 논문을 보면, 2013년 1월∼2020년 12월까지 8년간 영아살해죄로 기소된 사건의 1심 판결문 46건을 분석한 결과 분만 직후인 24시간 이내 신생아를 살해한 사례는 40건(87%)이었다. 가해자들은 모두 생물학적 친모로 78%(36명)가 초범이었다. 가해자의 연령은 판결문에 관련 정보가 공개된 것만 보면 8명이 미성년자였고, 3명은 20대 초반이었다. 살해 방식은 손이나 도구를 사용한 적극적 방식이 74%(34건)으로, 방치하거나 유기하는 소극적 방식(12건)보다 월등히 많았다.

판결문에 기록된 범행 동기(복수응답)는 임신 및 출산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 것이 두려워 은폐할 목적으로 살해한 경우(40건)가 가장 많았고, 생활고로 양육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살해한 경우(34건)가 뒤를 이었다. 두 살해 동기가 중복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아이의 친부가 가해자의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42건)였고, 인지한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 이는 가해자 대다수가 혼자서 양육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익명성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가해자들의 두려움은 스스로를 제도권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실제로 가해자 가운데 병원에서 출산한 사례는 전무했고, 주거지나 건물 화장실, 사무실 등에서 출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변의 부정적 시선을 우려한 가해자들의 심리가 병원 밖 출산으로 이어지면서 당국의 보호망에서 벗어난 ‘사각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감사원이 지난 2015∼2022년 태어난 영유아 중 출생신고가 안 된 2236명을 확인했지만, 이 수치에는 병원 밖 출산은 포함돼 있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병원 밖 출산 건수가 연간 100∼200건 정도 될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영아살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출산보호제’가 거론된다.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허용해 영아살해 유인을 줄이자는 취지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출산하지 않는다”며 “그런 분들에게, 출산 사실을 공개하지도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주는 동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병원에서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혼모 지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왜 미혼모 엄마들이 살인을 저지르는지 이유를 들여다봐야 한다”며 “현재로선 미혼모가 아이를 안전하게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정부제도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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