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 인도에서 8일 새벽까지 진행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 노숙집회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제각각의 기준으로 집회 금지·제한 통고를 남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후 4시부터 퇴근시간이라며 집회를 금지하거나 법적 근거도 없는 노상방뇨 우려 등을 이유로 밤샘 집회를 막는 식이다.
민주노총은 7월 총파업대회와 관련해 경찰에 신고한 52건의 집회·행진·시위 중 33건(63%)을 경찰이 시간제한 통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주로 평일 오전 6∼10시, 오후 5∼8시를 ‘출퇴근시간’이라며 집회를 제한했다. 지난달 29일 신고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경우 오후 4시부터 시작하는 행진을 퇴근시간 교통소통에 막대한 장애가 발생한다고 판단해 금지 통고했다. 하지만 두 단체가 낸 가처분 소송을 맡은 법원은 일부 차로 제한 등의 조건을 달아 집회를 허용했다.
출퇴근시간과 무관하게 집회를 제한한 경우도 있었다. 12일 금속노조 총파업의 경우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30분 사이 행진이 전면 금지됐다. 교통방해 우려와 함께 ‘신고한 또 다른 집회와 행진 일부 구간이 겹친다’는 이유도 들었다. 김한주 금속노조 언론국장은 “차로를 제한하거나 행진 코스를 변경하는 경우는 봤어도 아예 행진을 금지시키는 건 드문 일이다. 먼저 신고된 집회도 우리 집회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집회인데 방해하려고 저렇게 매일 신고해두면 집회를 다 막을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난 8일 강제 해산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 노숙문화제의 경우는 퇴근시간대(오후 3∼11시) 집회는 허용했지만, 밤 11시∼오전 7시 밤샘 집회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경찰의 시간제한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 근거도 미비한 상황이다. 경찰은 “퇴근시간과 겹쳐 심각한 교통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막고 있지만, 법원에서는 “경찰은 집시법에 따라 주요 도로의 교통소통을 위한 필요가 인정되면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는 등 전면적 금지 외에도 교통소통 장애를 해소할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경찰의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 노숙문화제 제한 통보서. 공동투쟁 제공
경찰이 밤샘 집회를 막는 것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투쟁에 보낸 금지 통고서를 보면 해당 집회를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라고 규정하며 “집회 참가자가 음주·소란·노상방뇨 등을 할 우려가 있다”고 적시했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는 “노상방뇨 등은 경범죄 처벌은 될지 몰라도 집회·시위 금지 제한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시간제한 통고 기준이 자의적이라 경찰이 막고 싶을 때 막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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