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물(음란물)이 저장된 클라우드에 대한 접근권이 있다고 해서 ‘성착취물 소지’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이 판단이 나왔다. 정보통신(IT) 기술 발달로 성착취물을 컴퓨터에 내려받기보다 클라우드를 통한 유통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법원이 ‘파일 소지’를 처벌하던 옛 잣대로 법조문을 해석해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놨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대법원은 성착취물 스트리밍이 가능한 링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성착취물 소지’로 처벌할 수 없다고도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성착취물 1125건을 다운받을 수 있는 구글 드라이브(클라우드) 주소를 전달받은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성착취물 소지)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ㄱ씨는 2020년 3월 ㅎ음란물사이트 운영자에게 4만원을 지급하고 메신저를 통해 클라우드 주소를 전달받았다. 이후 ㄱ씨는 구글 드라이브에 접속해 파일 개수와 데이터 용량은 확인했지만 영상을 시청하거나 자신의 컴퓨터 등에 저장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ㄱ씨가 성착취물을 컴퓨터에 저장하진 않았지만, 시청 가능한 클라우드 주소를 소지한 것 역시 ‘성착취물 소지’라고 보고 ㄱ씨를 재판에 넘겼다.
1·2심은 ㄱ씨의 행위가 음란물 ‘소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아무런 장애 없이 음란물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주소를 전달받음으로써 언제든지 음란물에 접근해 이를 보관·유포·공유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사실적 상태에 이르렀다”로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소지’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을 달리했다. 2020년 6월 개정되기 전 청소년성보호법 11조 5항(음란물 소지)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여기서 ‘소지’란 음란물을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 두고 지배관계를 지속시키는 행위를 말하고, 인터넷 주소(URL)는 인터넷에서 링크하고자 하는 웹페이지의 서버에 저장된 개개의 영상물의 위치 경로를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면서 “음란물을 구입해서 접근할 수 있는 상태만으로 소지로 보는 것은 ‘문언 해석의 한계’를 넘어선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이 법의 개정으로 성착취물을 ‘구입’하거나 ‘시청’한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돼 처벌공백 문제도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성계에서는 입법 취지를 간과한 시대착오적인 판결이라며 비판한다. 민고은 변호사는 “이 법률을 만든 취지를 생각해본다면 클라우드 소지도 ‘소지의 범위’에 포함해서 해석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오선희 변호사는 “디지털 자료는 옛날의 ‘빨간테이프’를 점유하는 개념하고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접근권이 있으며 ‘소지’로 봐야한다”라며 “개정법으로도 ‘구매’가 아닌 단순 ‘소지’로는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처벌공백 문제도 여전히 존재한다”라고 비판했다.
다만 장윤미 변호사는 “형사처벌 조항은 함부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면서 “인터넷 주소를 소지하고 있지만 영상은 다운받지 않은 사람을 실제로 다운·소지해서 본 사람과 동일한 죄명으로 처벌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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